모국은 예뻤다.
집안일을 보러 약 1년 만에 다시 찾아간 ‘뿌리’였다. 당일치기 설악산 여행에 동행했던 친구들의 말대로, 한반도의 산하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과연 4월이었다. 남녘에만 5,000만 겨레가 모여 사는 비좁은 땅이었지만, 피어나는 꽃과 새잎으로 인해 가는 곳마다 생기가 충일했다.
홍제3동 쪽에서 인왕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분홍 진달래와 노랑 개나리가 만발해 순수했던 한민족 본래의 마음빛을 떠올리게 했다. 꽃들이 뿜어대는 화사함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도중에 만난 달동네 ‘개미마을’이 지닌 남루함조차 정겹게 느껴질 정도였다. 중턱에는 약수터가 있어 정상으로 향하는 길손들에게 서늘한 기쁨을 선사하고 있었다.
연희동 서대문구청 근처에 누워 있는 야트막한 안산은 벚꽃이 너무 많아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꽃바다는 악다구니에 시달리며 사는 갑갑한 삶에서 마음 기댈 곳을 목말라 하는 수많은 서울 시민들이 찾는 안식처였다.
삼라만상이 부활하는 황홀함의 절정은 경기도 가평 ‘아침고요 수목원’에서 만났다.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이 원예 정원에는 평일임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입장해 속세의 풍진에 더러워진 눈을 넘실대는 생명의 빛으로 씻어내고 있었다. 넓은 수목원에는 백목련, 복사꽃, 벚꽃, 배꽃, 철쭉 등 친숙한 봄꽃은 물론이고 하늘매발톱, 백산차 등 잘 몰랐던 한국 고유의 야생화들도 가득했다. 이들은 앞 다퉈 꽃을 피워 물고 아름다움을 견주고 있다. 마치 “요즘 세간에서 뜨는 말인 ‘꽃보다 남자’ ‘꽃보다 여자’는 사실이 아니고 ‘사람보다 꽃’이야” 라고 외치기라도 하는 듯 싶었다.
꽃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길, ‘KBS, MBC, SBS에 한 번도 안 나온 순수한 식당’에 들러서 먹은 ‘신토불이 음식’ 열무비빔밥과 손두부 역시 고향의 정취를 선사하며 한국의 아름다움에 한 표를 보탰다.
모국은 부산했다. 세일 중이었는지, 소공동 롯데백화점은 엔화 강세를 즐기려는 일본인들을 포함한 쇼핑객들로 붐볐다. 바로 건너편의 명동 또한 인파로 넘쳐나는 가운데 ‘루마 패션’(리어카에서 파는 싼 물건)을 취급하는 상인들이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지하철 객차 안에서는 청소용 요술장갑 등 생필품을 팔거나 하모니카를 불며 구걸하는 사람들의 풍경이 예전과 너무도 똑같았다. 아직도 ‘개발도상’에 있는 것일까. 도로 보수공사와 학교 혹은 아파트 건설공사를 시내 도처에서 벌인다. 일반도로, 내부순환도로 할 것 없이 도심은 교통체증으로 온종일 몸살을 앓는다.
새벽 1시를 넘긴 시각. 술집이나 노래방이 문을 연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수많은 식당, 과일상, 제과점까지 불을 밝히고 손님을 맞는다. 그 야심한 시각에 영업하는 업소 중에 자그마한 구둣방도 포함돼 있음을 보고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친구 중 일부는 밤늦게까지 일하거나 세미나 준비를 위해 주말에도 회사에 나가 있었다. 낮에는 남의 회사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자신의 벤처기업에서 꿈을 불태우는 ‘2잡 인생’을 사는 선배도 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입시지옥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헉헉대고 있었다. 후배의 아들은 초등학교 저학년이지만, 주산을 배우는 한편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 한 달에 7만원을 내고 필리핀 현지인과 정기적으로 화상 채팅을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마지막 왕조의 이름 ‘조선’을 풀이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이제 약으로 쓰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 밤이 살아 있는 대한민국은 24시간 ‘소란한 대낮의 나라’였다.
하지만 세상 끝에 던져져도 민들레처럼 꿋꿋이 살아남을 우리 동포들은 이런 일상적인 소란과 분망함에 더해 전직 대통령이 검찰 소환수사를 앞두고 있고 혈육인 북한은 장거리 로켓을 실험하는 녹록치 않은 현실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은근과 끈기로 난관과 싸우며 처절하게 아름다운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김장섭 종교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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