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교실’은 1960~ 70년대 한국의 열악한 공교육 환경을 대변했다. 학급당 정원이 60명을 훌쩍 넘어 70여명에 이르기도 했고, 이것도 모자라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을 진행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사가 학생 개개인에 대해 관심과 정성을 쏟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결국 몇몇 공부 잘 하는 학생이나, 열성적으로 자녀교육에 매달리는 학부모의 아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항상 뒷전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순진한 아이들은 자신의 집에 TV가 있는지부터 시작해, 피아노, 그리고 전화기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 손을 들어 대답해야 했다. 알게 모르게 빈부의 격차를 체험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왕좌왕하는 교육정책은 앞으로도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사교육 전성시대의 기반을 다져버렸다.
이 영향 때문이었을까. 70년대 이후 미국 이민이 본격화 되면서 새로운 땅에 발을 내디딘 한인 이민자들의 한결같은 목적은 ‘자녀교육’이란 말로 채워졌다. ‘아메리칸 드림’의 출발점이 교육이었고, 궁극적 목표가 ‘경제적 부’였던 셈이다.
실제로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미국의 교육시스템은 이민자들에겐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고, 자녀가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는다는 자긍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분명 한국의 시각에서 볼 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미국의 교육시스템이 21세기 들어 흔들리고 있다. 학생 수는 계속 증가하는데 교사와 교실이 부족하고, 교육의 질 또한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지는 이미 오래된 얘기다. 여기에 더해 최근 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교육환경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달 LA시 교육위원회는 6억달러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5,400여명의 교직원 감원 방침을 결정했다. 전면 시행이 아닌 부분 시행을 하더라도 우선 정리대상이 될 것으로 보이는 경력 2년 미만의 교직원들은 지금 그야말로 가시방석이다.
이는 LA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렌지카운티 역시 3억달러에 육박하는 교육예산 적자로 3,000여명의 교직원 감원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교육계의 반응은 한 마디로 깊은 우려와 탄식이다. 정상적인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학교 안에 들어서면 더욱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얼마 전 만난 일선 교사들은 현재보다 학급당 정원수가 더 늘어날 경우 사실상 ‘통제 불능’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인생의 대부분을 교단에서 보냈다는 머리가 하얀 한 영어교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학생 개개인에게 정성과 관심을 쏟는다는 것 자체가 이젠 불가능하지 않겠냐?”고 ‘미국판 과밀학급’에 착잡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또 다른 교사는 “예산을 맞추기 위해 유능한 교사들을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것은 더 큰 것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며 정부와 교육국의 정책을 미래에 대한 대책 없는 관료주의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대학의 교육환경 역시 올해 큰 굴곡을 겪었다. 그동안 실력과 능력만 있으면 학비걱정은 나중 문제였지만, 이번 입시에서는 분명 ‘돈’이 문제였다. 많은 학생들이 보다 좋은 학비지원을 해주는 대학으로, 아니면 학비가 저렴한 대학으로 몰리는 현상이 어느 때보다 뚜렷했다.
불확실한 경제상황 속에서 자녀를 괜찮은 사립대에 보내려면 집까지 담보로 잡혀 융자를 받아야 하니 ‘학교 명성’과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모들의 마음은 ‘벙어리 냉가슴’이었다.
작금의 미국은 ‘교육의 천국’이라고 자신할 수 없다. 환경도, 실력도 학교에만 의지할 형편이 아니다. 이 같은 공백은 고스란히 학부모들의 몫으로 돌아오고 있다. 양질의 교육을 유지하기 위해 학부모들은 추가 부담과 희생을 요구받고 있다.
결국 자녀의 지적, 정서적 성장을 위해서는 부모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교육이 흔들리면 아메리칸 드림마저 흔들리기 때문이다.
황성락 특집 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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