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예기치 못했던 우연한 사건으로 희비가 엇갈리곤 했다.
20세기 들어 인류 최초의 대규모 국제전쟁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1914~ 1918년)은 점령지인 보스니아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가 적대관계의 세르비아 육군 정보부장이 밀파한 7명의 자객에게 피살되면서 시작됐다.
자객을 파견한 정보부장이나 암살의 밀명을 받은 자객들 모두 애국심에 불탄 안중근 의사의 심정이었겠지만 그 결과는 900만명이라는 엄청난 인명 손실을 초래했다. 당시 독일을 중심으로 한 3개 게르만 세력과 영국, 프랑스, 그리고 슬라브족의 러시아의 또다른 세력이 팽팽하게 맞서 있던 유럽의 화약고에 이들이 성냥불을 그은 것이다. 우연한 사건이 역사의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과학책에도 인류의 삶과 운명을 바꾼 우연한 발명품들이 그득하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알렉산더 플레밍은 1928년 런던의 세인트메리 병원에서 어린이 부스럼의 원인인 포도상 구균을 배양하다가 한 배양접시에서 병균들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배양접시에 자라는 푸른곰팡이 때문에 박테리아가 자라지 못한 것을 알아냈다. 이것이 감염환자 특히 전쟁터에서 상처가 곪아 터져 죽어가는 수많은 전상자를 살려낸 만능 항생제 페니실린의 탄생이다.
예기치도 않았던 우연한 발견이 세상을 바꾼 예이다.
16세기 영국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국왕 헨리 8세는 사랑하는 시녀를 차지하기 위해 로마 교황청에 반기를 들고 영국 종교 개혁을 이끌었다. 애초 그는 루터의 종교개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그가 로마 교황청에 반기를 든 이유는 18년간 살아왔던 왕비를 폐하고 내연의 불을 지펴왔던 시녀와 결혼을 시도하면서다.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 교회법을 들어 교황이 반대하자 화가난 헨리 8세는 교황에 반감을 갖고 있던 국민을 이용해 의회에서 이혼을 성사시키고 종교 개혁에 나선다. 왕의 흑심이 사회를 바꾸었다.
5개월전 겁 없이 북한 국경을 뛰어넘은 두명의 미국 여기자 사건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강경 일변도로 고립무원을 자초해온 북한이 그동안 숨겨뒀던 여기자 카드를 들고 나와 미국과 세계의 시선을 끌어 모은 것이다.
북한은 지난 3월 중국 국경에서 취재 중이던 앨 고어 전 부통령이 설립한 커런트 TV 여기자 2명을 불법 월경 혐의로 체포, 국제적 관심 속에 12년의 노동교화라는 중형을 선고해 국제사회의 우려를 자아냈다. 북한은 5월 제2차 핵실험을 강행해 국제사회를 긴장시키더니 미사일 발사로 주변 국가들을 자극하는 강수를 잇달아 두었다.
“뭘믿고 저러나”싶던 북한이 강경 일변도 정책에 대한 갖가지 해석을 내놓으며 대책마련에 부심하던 국제사회에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한 격이다. 북한은 자국민 보호에 민감한 미국에 억류중인 여기자 석방 카드를 내밀었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힘센’ 민간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끌어들이면서 말이다.
북한은 눈한번 깜빡 않던 미국의 관심을 끌어들였고 얼음보다 더 차갑던 세계의 이목을 모았으니 손해보는 장사는 결코 아니다. 중병설에 시달리던 김 위원장의 건재함도 과시했고 클린턴이란 거물을 내세워 염원해온 미북 직접 대화의 실마리도 잡은 형국이다.
한국과 미국은 여기자 석방과 북핵 제재와는 별개의 상황이며 클린턴 방북은 민간차원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클린턴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고맙다. 괜찮다.”는 형식적인 말만 주고받았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만면의 희색이 감돌아 싱글벙글하는 김 위원장과 “나는 민간 차원의 방북이야”를 항변하듯 굳어있는 클린턴 전 대통령 얼굴에서도 분명 북한은 남는 장사를 한 것이다. 남한에는 채찍을, 미국에는 당근을 내민 북한이 우연히 잡은 기회를 어떻게 이용할지 더 두고 볼 일이다.
김정섭 국제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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