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조지 워싱턴이 하늘나라 ‘국부(國父)클럽’의 브런치 모임에서 마주쳤다.
워싱턴: 굿모닝, 우남(이승만의 호). 두루마기 차림이군…어디 여행 떠나나?
이승만: 땅에 내려가는 길일세. 내일이 한국의 건국절이지. 내 공적을 기념하는 날이네.
워: 건국절? 광복절이겠지…미국이 한국인에게 해방의 은혜를 안겨준 1945년 8월15일!
이: 원래 광복절인데 3년 뒤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내가 건국기념일을 광복절에 덮어씌웠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한 대~한민국의 정부수립을 선포한 뜻 깊은 날이지.
워: 우리처럼 쟁취 않고 공짜로 얻은 광복이 찜찜해서 호도한 모양이지? 8월15일을 건국절로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더라구. 해방을 안겨준 미국의 은혜까지 호도하지는 말게나.
이: 자꾸 은혜, 은혜 하는데, 결과적으로 한민족을 절반만 해방시킨 꼴이 됐지 않았나! 그때 미국이 한반도 판세를 정확히 꿰뚫었다면 지금 3·8선도, 이산가족의 한도 없을 걸세.
워: 왓? 자네가 우찌 그런 말을? 당시 조국통일보다 정권욕에 눈이 어두웠던 지도자들 생각 안나나? 남엔 이승만, 북엔 김일성이 선두주자였지. 자넨 남북을 갈라서라도 단독정부를 세워야한다고 주장했었잖아…? 그건 그렇다 치고, 6·25 때 미국이 한국을 도와줬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겠지?
이: 이를테면 병 주고 약 준 꼴이지만, 죽을 고비에서 구해줬네. 하마터면 나도 취임 2년만에 다시 미국으로 쫓겨갈뻔 했지. 150여만 명의 미군 참전용사들에게 큰 빚을 졌네. 조금 전에도 여기 클럽에 오는 길에 하늘나라에 사는 5만4,000여 전사 미군장병 중 한명이 나를 알아보고 경례를 하더군…
워: 자네 공적을 기념한다는 내일이 내 생일처럼 공휴일인가? 내가 알기로 자네는 공식 기념관은 물론이고 변변한 동상도 하나 없는 모양이더구먼…
이: 광복절 기념식만은 못하지만 건국절 행사가 따로 열리지. 군사정권과 소위 진보정권은 나를 푸대접했지만 최근 내 위상을 회복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네. 독립투사, 건국 대통령, 북한의 적화통일 기습남침을 이겨낸 호국영웅, 무엇보다도 오늘날 한국이 누리는 자유와 번영의 토대를 마련한 선각자이자 국부로서의 나의 공로를 제대로 평가한 거지. 그래서 광화문 광장을 ‘이승만 광장’으로 개칭하고 그곳에 내 동상을 세우기 위해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네. 자네는 ‘건국대통령 이승만 기념사업회’가 한국은 물론 미국 곳곳에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자네 이름을 딴 워싱턴주에서도 내 기념사업회가 내일 아침 페더럴웨이라는 곳에서 건국절과 나를 기념하는 조찬기도회를 연다네.
워: 근데, 자네는 여전히 국부자격이 함량미달이라는 말을 들으니 안 됐네. 나나 저쪽 테이블에서 딤섬을 먹고 있는 손문(중국 국부)에겐 그런 시비가 전혀 없지. 장기집권 욕심이 탈이었어. 나는 사사오입이나 발췌개헌 따위 없이도 종신 대통령이 될 수 있었고, 심지어 왕이 돼달라는 청원까지 들었지만 한번 연임 후 빈털터리가 돼 마운트 버논 고향집으로 미련 없이 돌아갔네. 그 집이 지금은 내 기념박물관이 됐지.
이: …
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자네 18번 슬로건도 시대착오네. 이번에 가면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고 외치게나. 한국은 좁은 땅덩어리에 사람이 너무 많아. 내 이름을 딴 워싱턴주에 한국인이 적어도 지금보다 10배인 150만 명은 살도록 하게나. 시대가 바뀌면 국부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네…
이: 허허, 요즘은 미국인들이 한국에 잡 구하러 가는 세상이네. 상황판단을 못하는 건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구먼…
내일이 65주년 광복절이자 62주년 건국기념일이라서 치인설몽(痴人說夢)을 늘어놨다.
윤여춘(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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