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파독 간호원, 1972년 도미, 텍사스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올드타이머 오성자씨(66, 필명 채운)가 슬픔을 견디기 어려웠던 삶의 편린과 죽음을 눈앞에 두고 “절규의 소리”를 묶어 ‘축복이여 이처럼’이란 시집을 냈다.
24일 영동회관에서 가진 시집출판 기념회에서 시인이며 그의 남편인 오원용씨는 병원에 입원한 부인이 “영정사진 하나 찍고 시집하나 내보자”는 말에 “이것이 마지막 소원”이구나해서 시집을 발간하게 됐다고 절박했던 상황에서의 시집 출판동기를 밝혔다.
달라스 한인 문학회 주최 달라스 한인 예술인 총연합회 후원 하 개최한 출판기념회에는 여류시인 안민성, 김정숙, 박인애씨와 원로시인 소설가, 김수자, 오승용씨 등 현 한인문학회 회원들과 오성자씨 가족, 김미희 달라스 예술인 총연합회 회장과 그 회원들이 대거 참석, 오성자씨의 한 평생의 영혼의 노래를 담은 시집 출판을 축하했다.
아동 문학가이며 여류시인인 김정숙씨는 “반평생의 삶을 인내와 끈기로 살아오면서 쓴 100여 편의 이 시는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사랑의 늦둥이 열매”라며 축하했다.
소설가 김수자씨는 “오성자의 시집은 혈압이 200까지 상승,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그의 인생의 최악의 시간에서 최상의 시간으로 승화시킨 반전의 왕 오 헨리식 결말을 낸 ”오성자의 마지막 잎새“라고 시의 경지를 표현했다.
오승용 달라스 문학회 회장은 “백의의 천사로서 시를 표현한 오성자 시인의 ‘축복이여 이 처럼’이란 시집은 낭만적 서정과 생명, 기도 등 3가지를 골고루 갖춘 음악성으로 표현하면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같은 ‘나는 운명의 끈을 붙잡았다’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오성자씨는 “이름도 없는 무명시인이 여러분 앞에 서 있으니 부끄럽기도 하지만 감사하기도 한다” 면서 “제게 문학이란 초석은 부친(김용초)께서 깔아 주셨다. 6.25때 일본어와 영어가 능통했던 아버지가 7살 때 북으로 납치당해 중학교 때 다시 아버지를 뵈었지만 아버지를 통해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꿈을 꿔 봤다. 19살 때 7남매의 2째 언니가 죽어 그 슬픔을 견디기 어려웠을 때마다 시를 썼다. 40이 넘어 대학에서 성악에 심취, 10년 이상 성가대에서 봉사도 했지만 나이 들면서 당뇨로 인한 풍으로 쓰러져 병상에서 나 자신과 같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수십 번 만났다. 이때 나를 빨리 데려가 달라고 죽음을 향해 절규하듯 시를 썼던 것 중 하나가 ‘사랑하는 이여’였다. 또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촛불을 켜고 비는 모습을 그린시가 ‘촛불’이였다”고 시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오성자 시인의 시 가운데 ‘사랑이란’을 김미희 달라스 예총회장이, ‘영혼의 노래’를 금년 시집을 출판한 안민성 여류시인이 ‘가을에 서면’을 여류시인 박인애 문학회 부회장이 낭송했다. 이날 오성자 시인은 축하 꽃다발과 축하공연을 받고 축하 케이크를 남편인 오원용시인과 자른 후 자신의 시집인 ‘축복이여 이처럼’ ‘촛불/생의 한가운데‘를 낭송했다.
<정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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