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립학교들 돈이 없어 난리에요. 형편이 나아지면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고 싶네요”
한인이 다수 거주하는 LA 북쪽 소도시에 8년째 살고 있는 박모(40)씨. 큰 아들(5)이 킨더가튼에 재학 중인 박씨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작년 가을에 개교한 새 학교인데도 불구하고 교내 도서관에 책이 단 한권도 없어 학부모들이 십시일반 기부금을 내 책을 구입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이같이 말했다.
LA 지역에 사는 김모(42)씨는 최근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통 큰(?) 기부를 했다.
3학년과 1학년에 재학 중인 남매를 둔 김씨는 학교측의 저돌적인 기부금 모금 캠페인에 동참하기로 결심해 300달러를 선뜻 내놨다. 김씨는 “다른 건 몰라도 더 이상 교사들이 해고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며 “재정적자 때문에 공립학교가 휘청대고 있는데 정부 당국자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미 전역에서 공교육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리가 들리지만 가장 많은 한인들이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는 이곳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문제가 유독 심각하다.
가주 공립학교(K~12)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지난 3년간 3만명의 교사와 1만명의 학교 스탭이 해고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제리 브라운 주지사 등 정부 당국자들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세금인상 연장 발의안이 올 상반기 중 주민투표에 부쳐져 통과되지 못할 경우 2만명의 교사가 추가로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교육계와 학부모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학급 과밀현상, 거듭되는 교사 및 학교 스탭의 해고, 각종 교육 프로그램의 폐지 및 축소 등 가주 공교육이 처한 현실을 들여다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가주 공립학교의 학급 과밀현상은 50개주 가운데 최악이며 학생들이 연중 수업을 받는 날은 선진국 중 가장 짧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 교육부에 따르면 공립학교 학생들의 리딩 실력은 50개주 가운데 50위로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수학과 과학 표준시험 성적은 각각 47위와 48위로 최하위권에 랭크돼 있다.
고교 중퇴율도 30% 이상으로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공교육에 구멍이 뚫리면서 학생들의 공립학교 이탈도 가속화되고 있다. 커뮤니티에 잘 알려진 명문 사립학교들이 원서 접수를 시작하면 지원자가 벌떼 같이 몰려든다.
사립 중학교, 고등학교 들어가기가 웬만한 아이비리그 대학 들어가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릴 정도다. 웬만큼 경제력을 갖춘 가정이라면 자녀를 돈 많고, 시설 좋은 사립학교에 보내길 원하는 것이다.
공교육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주정부가 문제해결을 위해 어떤 비책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주 교육부 수장인 탐 톨락슨 교육감을 지난주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지난 3년간 K~12 공교육 예산은 180억달러, 고등교육 예산은 같은 기간 20억달러가 삭감됐다”며 “유감스럽게도 재정적자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그는 조심스럽게 낙관론을 폈다.
톨락슨 교육감은 “공직자들도 부모들 못지않게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며 “가주는 지금의 위기상황을 돌파한 뒤 더 강해지고 똑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아이들이 콩나물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책 한권 없는 학교 도서관을 멍하니 바라보는 현실을 계속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교육은 국가와 사회 발전의 근본초석이다. 오늘 날 미국이 세계를 호령하는 초강대국이 된 배경에는 정답을 강요하지 않고 도전을 중요시하는 교육의 힘이 있었다.
부모와 학생이 공교육을 불신하는 사회에서 미래는 없다. 모든 일을 제쳐두고라도 공교육 붕괴는 막아야 한다. 공교육을 살려내지 못하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모두 빼앗는 재앙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성훈 특집 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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