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 비슷한 시기에 신생국으로 출발한 두 나라가 있다. 하나는 식민지에서 벗어나자마자 나라가 두 동강이 나 공업은 없고 농업만 있는 기형적인 구조로 시작한데다 그나마 몇 년 뒤 동족상잔의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전국이 초토화됐다. 변변한 천원자원이라고는 없는 이 나라는 전쟁 후 수년 동안 오로지 미군의 구호물자로 살아남았다.
반면 다른 나라는 한 때 세계 최대 쌀 수출국일 정도로 먹을 것이 풍부했다. 고급 목재인 티크의 75%가 이 나라에서 나왔고 천연개스를 비롯한 지하자원이 무궁무진한 이 나라는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이는 비극도 겪지 않았다. 이렇게 서로 극과 극인 조건에서 출발한 두 나라의 현재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한 나라는 최근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액 1조 달러를 돌파하는 위업을 이뤘다.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가 넘어서고 반도체, 스마트 폰 같은 첨단 산업과 자동차, 철강 같은 중공업 분야에서 모두 선두를 달리고 있다. 세계가 알아주는 IT 강국이고 민주화에 성공했으며 요즘은 문화, 음식, 연예 등 소프트웨어에서도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다.
반면 다른 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1,400달러로 아시아 최빈국 중 하나다. 유엔보건기구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 건강 지수는 세계 190개국 가운데 190위고 부정부패가 만연해 외국인이고 내국인이고 비즈니스를 제대로 할 수가 없디. 인신매매에 아동 강제 노동, 고문과 인권 유린이 나날이 자행되고 국민들은 독재와 빈곤에 신음하고 있다.
더 길게 말할 것도 없다. 한국과 버마 이야기다(군부는 나라 이름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꿨지만 민주 인사들과 미국 등 여러 나라는 아직도 버마를 그대로 쓰고 있다). 한국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에서 불사조처럼 일어섰는데 버마는 온갖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도 어째서 이 지경이 되었을까.
두 나라는 1961년과 1962년 역시 비슷한 시기에 군부 쿠데타를 경험했다. 같은 방식으로 집권했지만 그 후 두 지도자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박정희는 수출에 목숨을 걸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들었으며 수출을 잘 하는 기업에게는 저리 융자로 투자를 쉽게 늘려갈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미얀마의 네윈은 ‘버마식 사회주의’를 내걸고 북한의 주체사상 못지않은 고립과 자력갱생의 길을 택했다. 사회주의 일당 독재로 정치적 자유는 사라지고 시장 경제도 무너졌다. 모든 사회주의 체제가 그렇듯 이윤 동기가 사라지고 일하나 안하나 똑같이 나눠 먹기식 생활 방식이 몸에 배면서 산업은 침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투자는 없고 일은 안하고 모든 것을 정부 관리 눈치나 보고 뇌물을 줘야 해결되는 사회는 몰락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현 버마 철도의 대부분은 19세기 영국 식민지 때 건설된 것이다.
네윈은 갔지만 그 후계자인 군부는 그 정책을 그대로 이어갔다. 80년대 말 민주화 운동이 일고 야당이 선거에서 이기자 이를 무효화 하고 미얀마의 국부의 딸로 인권 운동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를 연금해 버렸다. 수치는 노벨 평화상을 받기는 했지만 최근까지 20년 동안 가택 연금 생활을 했다.
그 버마를 지난 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방문, 수치 여사와 만났다. 버마는 유일하게 중국과만 교류해 왔는데 갈수록 중국의 횡포가 심해지자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를 모두 중국에 넘겨주게 생겼다는 우려에 못이긴 군부가 민주 인사 탄압을 완화하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자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쇄국과 사회주의를 50년 한 나라와 개방과 시장 경제를 50년 한 나라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한국과 버마처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도 없다. 그럼에도 한국의 몇몇 눈 뜬 장님들은 버마의 길을 가고 싶어 하니 알 수 없는 일이다. 힐러리의 방문을 계기로 버마도 하루속히 개혁 개방의 길로 나오기를 기대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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