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우울증이 엄습한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다. 날은 빨리 어두워지고 날씨도 추워지면서 마음과 몸은 쉬 위축된다. 의사들은 일조량 부족으로 멜라토닌 분비가 영향을 받은 탓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과학적 설명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계절적 변화도 변화지만 남들은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연말의 흥청망청 분위기에서 나만 소외됐다는 생각이 우울한 감정을 한층 더 깊게 만든다.
사람은 비교의 동물이다. 휘황찬란한 연말의 장식들과, 캐롤이 울려 퍼지는 샤핑센터의 북적거림은 외로운 처지의 많은 이들을 우울의 늪으로 밀어 넣는다.
라디오에서 울적한 크리스마스를 호소하는 노래가 많이 들리는 것도 이즈음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은 보람 있게 한해를 마무리 하는데 자신은 별로 이뤄놓은 것 없이 또 다시 세월을 떠나보낸다는 자괴감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이런 우울증과 무력감이 섞이면서 자살충동이 고개를 든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많은 이들이 우울한 감정으로 고통을 호소하지만 연말 할러데이 시즌의 실제 자살률은 오히려 낮아진다는 점이다. 자살에 관한 수많은 조사보고서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연구들에 따르면 연말의 자살은 통념과 달리 평소보다 줄어들며 특히 크리스마스에서 새해까지의 기간에는 아주 큰 폭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기간의 자살률이 무려 40%나 낮아진다는 보고도 있다.
연말에는 사람들이 더 우울해지는 만큼 자살도 많이 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미국 신문들의 연말 자살기사들을 분석해 보니 3분의2는 자살의 원인을 연말 우울증과 연관시키고 있더라는 언론학자의 논문도 있었다. 이처럼 연말에는 우울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늘어난다는 믿음은 아주 뿌리가 깊
다.
그렇지만 실제는 이런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통념과 달리 자살률이 가장 높은 시기는 날씨가 풀리면서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봄철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우울한 감정은 평소보다 더 자주, 그리고 더 깊이 엄습하는데 자살은 줄어드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현상에 대한 완벽한 설명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상담 전문가들은 이것을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오가는 카드와 안부 전화가 우울로 고통 받는 영혼들에게 커다란 위로를 안겨주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가족과 친구로부터 날아드는 카드나 전화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닌, 가진 것에 대한 자각이 나쁜 생각을 밀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당신이 별 생각 없이 보낸 한 장의 카드 혹은 한 통의 안부전화가 누군가에게는 생명줄이 되기도 한다.
외로움은 인간의 숙명이다. 그래서 죽음과 세금, 그리고 외로움은 우리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세 가지라고들 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과 비극은 외로움을 제대로 응시하지 않고 피하려고 하는데서 시작된다. 그래서 파스칼은 “인간들의 문제는 대부분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수많은 일탈과 잘못된 선택들이 이것을 증명해 준다.
누구나 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외롭다. 그러니 홀로 있는 즐거움을 느끼는 고독의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해도 나 혼자만 외롭다는 단절감만은 극복해야 한다. 한 단편소설의 주인공 잭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무 약속이 없었다. 동료들이 이런 저런 약속이 있다며 자랑할 때 그는 “애인과 보내기로 했다”며 거짓말을 둘러댔다.
하지만 막상 갈 곳이 없었던 잭은 혼자 공원을 찾았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야 할 자신의 동료들이 자신처럼 쓸쓸히 공원을 거닐고 있는 것이었다. 서로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으면서. 이 소설은 가면 속에 감추어진 인간들의 외로움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한 장의 카드나 한 통의 전화를 통해 전해지는 짧은 인사와 격려가 누군가의 삶
을 수렁에서 건져낼 만큼 큰 위로가 된다면 받기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항상 더 큰 기쁨이 되는 법이니 말이다. 그러면서 치유의 효과 또한 두 배가 된다. 연말 할러데이 시즌 자살률의 역설은 아주 작은 관심과 위로가 때때로 얼마나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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