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신 7대 경관에 뽑히기 위해 사용한 행정전화 비용이 200억원을 넘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7대 경관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며 공무원들이 전화통에 매달린 결과다. 세계 최고 경관의 하나로 선정됐다는 발표에 잠시 환호했지만 변변한 사무실조차 없는 정체불명의 재단과 관련한 각종 의혹과 구설이 터져 나오면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미끼에 걸려들었다는 느낌까지 든다.
아름다운 제주를 세계에 알리는 것은 좋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뒷맛이 개운치 않다. 물론 그 어떤 나라도 한국처럼 극성스럽게 전화통에 매달리지는 않았다. 몇 년 전 한국의 가수 비를 타임지가 선정한 100대 유명인의 하나로 만든 것도 극성스러운 한국 네티즌들의 소나기 클릭이었다. 이렇게 선정되고 나면 세계가 인정했다느니 하면서 호들갑이지만 정작 외국인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시큰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하는 만큼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한국인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하지만 자존감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글자 하나 차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사랑할 줄 아는 안정된 정서이다. 배가 풍랑에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발라스터 밸브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당당하다. 그리고 호의적인 평가를 구걸하지도 않는다.
반면 이것이 낮으면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고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대개 자존심이 필요 이상으로 센 사람들에서 이런 성향이 많이 나타난다. 그래서 지나치게 강한 자존심은 낮은 자존감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기꾼들이 가장 좋아하는 표적은 이처럼 자존심은 강한데 자존감은 낮은 사람들이다. 1970~1980년대 한국사회에 만연했던 네다바이는 이런 심리를 이용한 전형적인 사기였다. 엉터리 물건을 들고 접근한 후 안사겠다고 하면 “당신이 이런 물건을 살 주제나 되겠느냐”며 염장을 지른다. 자존심을 들쑤셔 판단력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포장만 더 그럴듯할 뿐이지 마케팅이라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이런 수법과 다르지 않다.
한국이 명품업계가 가장 선호하는 시장으로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난 주말 한국의 한 백화점에서 실시한 명품세일 행사에 안전사고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는 소식이다. 한국의 명품광풍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많이 팔수록 좋은 명품업체들조차 의아하게 여길 정도라니 정상은 아니다.
명품시장을 받쳐주는 계층은 부자가 아니다. 자존심은 높은데 정작 자존감은 낮은 사람들이다. 아시아가 명품시장으로 급격히 떠오르는 것에 대해 한 마케팅 전문가는 사회적인 불안감이 높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아주 정확한 분석이다. 자존감이 약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게 마련이고 이런 흔들리는 감정을 달래기 위해 소비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높은 자존심과 낮은 자존감이 초래하는 한층 더 파괴적인 결과는 치솟는 자살률이다. 한국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은 한국의 자존감 수준이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일리노이 소재 브래들리 대학이 53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존감 수준 조사에서 한국은 44위에 머물렀다. 세르비아, 칠레, 이스라엘 등이 상위를 차지했으며 미국은 6위였다.
이 조사결과가 말하듯 자존감의 수준은 경제적 지위와 비례하지 않는다. 행복이라는 개념을 국민복지 지수로 처음 도입한 히말라야의 부탄 왕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에 불과하지만 돈 쓰겠다는 관광객들도 가려 받을 정도로 자존감은 대단히 높다. ‘졸부근성’은 굉장히 잘 살게 됐는데도 자존감은 여전히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를 꼬집는 말이다. 경제적으로 조금 잘 살게 됐다고 해서 자존감이 저절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자존감이 허약하면 항상 불안하고 다른 이들의 시선에 쉽게 휘둘린다. 그래서 삶의 만족감이 떨어진다. 개인과 국가 모두 마찬가지다. 더 당당하고 행복해지려면 쓸데없는 자존심과 체면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몸 챙기고 돈 버는 일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가끔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나의 자존감은 안녕한가.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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