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망받던 한국의 젊은 벤처사업가가 최근 LA 출장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운의 사업가는 세계최초로 4D 테마파크를 세워 벤처업계의 총아로 떠올랐던 39세의 최은석씨이다. 그는 지난해 한국정부로부터 콘텐츠 대상을 받는 등 앞길에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꿈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이국땅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성공이 보장된 듯 보였던 전도유망한 사업가는 왜 자신의 삶을 스스로 파괴했을까. 마지막 순간 고통스러웠을 그의 마음을 정확히 들여다볼 길은 없다. 다만 인간의 마음에는 ‘삶의 본능’과 함께 ‘죽음의 본능’이 있다고 했던 프로이드의 분석을 빌어, 남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을 살아가던 사람들 역시 그래서 자살한다는 설명을 해 볼 뿐이다.
죽음의 본능은 삶 이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려는 마음이다. 프로이드 정신분석학에서는 파괴적인 결과가 뻔한데도 저지르는 수많은 행동들, 즉 전쟁과 폭력은 물론이고 흡연과 난폭운전 같은 개개인들의 나쁜 습관들도 죽음의 본능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감춰져 있던 죽음의 본능은 어떤 계기가 발생하면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표출된다. 이런 충동은 사회적 신분과 처지를 가리지 않고 찾아든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든 엘리트들의 자살이 발생하는 것이다.
최은석씨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그는 평소 “대학 중퇴에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선례가 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 왔다. 그가 다녔던 대학은 세칭 일류 명문은 아니다. 번듯한 학력이나 학벌 없이 벤처계의 총아로 떠오른 그에게 더욱 큰 관심과 눈길이 쏠린 건 당연하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사업화 한 후 실적이 신통치 않자 주위의 기대는 압박감이 돼 돌아왔다.
한국은 경쟁으로 시작해 경쟁으로 끝나는 살벌함이 지배하는 사회다. 대학입시를 놓고 목숨 걸듯 경쟁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단 한 번의 실패는 곧 끝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래서 어떤 결정을 내리고 선택을 하는 일은 외줄타기를 하듯 위태롭고 부담이 된다. 한번 발을 잘못 디디면 그대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몇 달 전 미국을 방문했던 안철수 교수는 에릭 슈미츠 구글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혁신의 싹을 자르지 않으려면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평소 실패에 관대한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벤처의 미래는 없다는 지론을 펼쳐왔다. “흔히들 실리콘밸리를 성공의 요람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실패의 요람이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실패한 기업가에게는 다시 기회를 주기 때문에 혁신과 모험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최씨는 생각보다 실적이 나지 않자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가 목숨을 끊었다. 실패에 대한 거대한 두려움이 그를 짓눌렀던 것 같다. 특히 학력이나 배경에서 비주류였던 그로서는 이런 두려움이 더욱 컸을 것이다. 만약 그가 한 번쯤 실패해도 용인이 되고 다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에서 자신의 꿈을 펼쳤더라면 극단적인 선택은 피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한국은 대표적인 위험회피 사회로 꼽힌다. 한 번 실패할 경우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큰 까닭에 모험은 피하려고들 한다. 한국 최고의 명문이라는 카이스트가 경쟁력을 명분으로 학점이 나쁜 학생들에게 ‘징벌적 등록금’을 부과한 후 재학생들이 잇달아 자살한 것은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가 낳은 비극이다.
더 역설적인 것은 경쟁력을 내세워 징벌적 등록금을 부과하자 많은 학생들이 어려운 과목은 피하고 학점이 잘 나올 수 있는 과목으로 몰렸다는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창의적 인재들이 나올 수 있을 지 의문이다. 하기야 실패의 대가를 얼마든 흡수할 만한 조건과 재력을 가진 재벌가 자제들조차 모험과 혁신을 추구하기보다 빵과 커피를 팔아 돈을 벌려하는 판이니 더 말해 무엇 할까.
한 젊은 벤처사업가의 비극적 소식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자살론 연구로 19세기 사회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에밀 뒤르켐의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명제였다. 이 명제가 100% 진리는 아닐지 몰라도 많은 자살이 사회적 부조리의 결과임은 부인하기 힘들다. 패자부활전이 사라진 사회는 모험정신을 억압하고 자살을 부추긴다. 한국의 자살률이 유독 높은 것은 약해 빠진 사람들이 유난히 많아서가 아니다.
<조윤성 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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