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로렌스 캇츠 교수는 얼마 전 하버드대학에서 열렸던 불평등 관련 포럼에 참석해 지난 몇 십 년 동안 미국인들의 소득격차가 얼마나 심화돼 왔는가를 실감나게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만약 어떤 놀라운 마법에 의해 미국 상위 1% 계층의 부 점유율을 1979년 당시로 되돌리고, 남는 것을 하위 90%에 나눠준다면 모든 사람이 1인당 9,000달러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이 소득격차를 비판하면서 “하위 80%의 가계가 매년 7,000달러짜리 수표를 써서 상위 1% 가계로 보내준 셈”이라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의 얘기다.
캇츠 교수는 그러면서 불평등한 사회를 기괴한 모습의 아파트에 비유했다. 이 아파트의 꼭대기에는 번쩍이는 최고급 시설을 갖춘 펜트하우스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밑으로 내려갈수록 건물의 모습은 초라하고 볼품없어 진다. 그러다가 지하실에 이르면 물이 넘쳐나고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등 최악의 상태다.
물론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멈춘 지 오래다.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아파트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살기란 힘들다. 펜트하우스 주민들 역시 그렇다. 아무리 초호화 펜트하우스를 갖추고 있어도 이런 건물의 가치는 높을 수가 없다.
불평등이 극심한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빈곤한 계층뿐 아니라 부자들도 건강한 삶을 누리기 힘들다. 심리적인 안정감이 저해되는 것은 물론이고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질병에 취약해진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구성원 모두가 건강하다는 것은 사회 역학 전문가들이 오랜 연구를 통해 규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평등해야 건강하다고 하는 것이다.
불평등의 부작용은 건강에 그치지 않는다. 불평등은 성장을 저해한다. 성장과 분배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보수진영, 특히 보수언론들은 평등이 경쟁을 저해해 성장을 막는다는 논리를 펴왔다. 하지만 이 주장은 허구임이 드러나고 있다.
지구촌을 강타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여전히 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평등수준이 높다. 코넬대학 로버트 프랭크 교수는 역작 ‘다윈 경제학’에서 65개국을 분석한 후 “불평등이 심한 나라일수록 성장이 느렸으며 각 개별국가로 볼 때도 소득불평등이 심화된 시기에 성장이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고 결론짓고 있다.
왜 불평등은 성장을 저해할까. 그 대답은 간단하다. 불평등은 구성원들 간의 신뢰를 손상시키기 때문이다. 신뢰는 경제의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요소다. 신뢰가 사라진다는 것은 다른 이들의 행동을 감시하면서 자신의 것을 지키는 데 많은 비용을 써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성장의 잠재력을 갉아 먹는다.
미국이 가장 건실한 성장을 구가한 시기는 평등지수가 높았던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였다. 경쟁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사조가 지배하기 시작한 후 어떤 부작용들이 나타났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미국인들이 쓰라리게 그것을 경험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사회적 관계를 맺을 때는 보통 두 가지 전략을 사용한다. 하나는 ‘지배의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친화의 전략’이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친화의 전략’보다는 ‘지배의 전략’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재벌들의 기득권 지키기 행태가 보여주고 있듯이 한국은 ‘지배의 전략’이 판치는 대표적인 사회이며 미국도 점차 이것을 닮아가고 있다.
19세기 미국사회를 둘러본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토크빌은 미국인들의 공동체 정신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책에 “미국인들은 공동체의 이익이 결국 개개인의 이익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 같다”고 썼다. 미국을 키워온 건 ‘친화의 전략’에 바탕을 둔 이런 정신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무너지면서 미국은 불신과 대립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공화당 극보수층에 지지기반을 둔 대선주자 릭 샌토럼은 아예 드러내놓고 자신은 소득불평등을 지지한다고 밝힌다. 그는 시장의 원리와 개인의 능력 차이를 들먹이며 “미국의 소득불평등은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어느 사회에서도 완전한 평등상태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샌토럼은 불평등을 개인의 능력문제로 만듦으로써 개선을 위한 제도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희석시키고 있다. 불평등을 소신으로 가진 인물과 세력이 권력을 쥐는 것은 미국의 건강과 성장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유권자들이 똑바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