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을 주장하는 많은 종교단체들은 그들이 예언했던 종말이 빗나간 후에도 대부분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는다. 예언한 종말이 일어나지 않으면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허황된 것임을 깨닫고 정신 차려야 하는데 실제로는 이전보다 더 극성이 된다.
50여 년 전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한 종말론을 신봉하는 사이비 종교단체를 연구했다. 이 광신단체의 예언은 물론 빗나갔다. 그렇다면 환멸을 느낀 신도들은 떠나야 하는 것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런데 종말론이 빗나간 후 많은 신도들이 오히려 이전보다 더 뜨거워지는 이해 못할 현상이 나타났다. 이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신을 감동시켜 종말을 피하게 했다며 한층 더 종말론을 추종했다.
페스팅거는 인간은 자신의 믿음과 사실이 다를 경우 교묘한 마음의 작용을 통해서 이런 부조화를 해소해 나가려 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런 마음의 상태를 ‘인지부조화’라고 불렀다. 사이비 종교단체 신도들의 모습은 우리들이 인지부조화를 어떻게 해소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인지부조화가 일어나면 불편하다. 두 개의 마음, 두 개의 생각이 부딪히니 당연한 일이다. 그럴 경우 이런 상태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합리화를 통해 불편한 상태를 해소하려 들게 된다. 가령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생각과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두 가지 생각이 부딪힐 때 우리는 갈등한다.
이런 부조화를 해소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합리화이다. “오늘은 저녁을 조금 먹었으니까”라든가 “일주일에 3번은 운동 하니까 아이스크림 한번 먹는 것쯤은” 등등 부조화를 없애줄 구실을 찾게 된다. 인지부조화에 빠지면 혼란스럽고 불편하다. 하지만 마음은 이런 부조화가 오래 지속되지 않도록 신묘하게 작동한다.
그런데 가끔은 인지부조화를 없애려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잘 해소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건 아닌데…”라는 번민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것이다. 이런 부조화를 해소하는 방식은 딱 두 가지다. 합리화의 자기 최면을 계속 걸거나 아니면 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한국의 주요 방송사 기자들과 PD들, 그리고 아나운서들이 동시에 정권의 언론 장악 기도를 규탄하고 공정방송을 촉구하면서 집단 파업에 돌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들의 파업은 언론의 공정성을 되찾기 위한 것이지만 심리학적으로는 해소되지 못한 인지부조화가 폭발한 것으로 보면 정확하다.
보통 수준 이상의 판단력을 가졌을 이들이 왜곡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느꼈을 자괴감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아나운서들이 “정권홍보 방송을 하면서 부끄러웠다”며 고백하는 모습에서 이들이 겪었을 인지부조화의 고통이 전달돼 온다.
정권홍보의 나팔수 역할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조직의 방침이니까” “기다리면 나아지겠지” “먹고 살아야 하니까” 등등 자신의 마음 속 갈등을 다스리기 위한 수많은 합리화의 구실을 찾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불편함이 해소되지 않고 한계에 달하자 행동으로 표출한 것이다.
가끔은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빗나간 생각과 행동이라도 이것이 확고한 신념이 되면 불편함이 없다. 남들 눈에는 꼴불견이고 어리석기 짝이 없어도 정작 당사자는 부조화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흔들리거나 눈치 보는 일이 없다. 예를 들어 생계형 아부의 수준을 넘어 아부가 소신이 된 사람들은 철저한 자기합리화로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는데 누구보다도 뛰어난 달인들이라고 보면 된다. 독재정권 밑에서 권력자의 수족노릇을 하며 탄압과 폭거에 앞장선 인사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이라고 강변했을 때 그것은 정말로 그들의 신념이었을 것이다.
인지부조화로 인한 불편을 해소하려 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사소한 사안이라면 부조화 해소를 위한 합리화와 외면은 마음에 평화를 주는 안정제 기능을 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부조리와 불의에 관한 것일 때는 양심의 문제가 된다.
양심의 소리는 우리 마음 속 부조화가 만들어 내는 외침이다. “남들도 모두 모른 척 하는데”라면서 침묵을 합리화하지 않고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쳤던 소년처럼 말이다. 마음 속 생각들이 부딪히는 불협화음이 당장은 불편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자꾸만 침묵하려는 의식을 일깨워주는 가시 같은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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