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한국의 재벌들이 문어발식으로 동네상권을 집어삼키는 일이 계속되자 이명박 대통령은 경주 최부잣집을 예로 들며 자제를 당부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주 가문으로 꼽히는 최부잣집에는 흉년에는 헐값에 나오는 논밭은 사들이지 말라는 가훈이 있었다. 또 파장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건을 사는 것도 금기시했다. 남의 절박한 처지를 이용해 돈 버는 것을 철저히 금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미담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탐욕은 스스로는 억제되지 않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제어공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빌리자면 탐욕은 ‘양성(포지티브) 피드백’에 의해 갈수록 커지게 돼 있다. 작은 탐욕이 실현되면 되먹임 작용을 통해 더 큰 탐욕을 부리게 된다. 그래서 일단 발동이 걸린 탐욕은 잘 제어되지 않는다. 경주 최부잣집은 절제의 도리를 담은 가훈을 통해 탐욕을 억제한 아주 드문 사례일 뿐이다.
지난 주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한 중간급 간부의 공개사표로 또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파생상품을 파는 부서의 실무책임자인 게리 스미스는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골드만삭스는 돈 벌기에만 몰두하고 고객의 이익은 안중에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골드만삭스에 독성 강하고 파괴적인 문화가 퍼져 있다고 비판했다.
스미스의 폭로행위가 놀랍긴 해도 내용은 별로 새삼스럽지 않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월가의 많은 투자은행들이 얼마나 부도덕하고 무모한 방식으로 배를 불려왔는지 이미 다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만 100억달러라는 거액의 공적자금 수혈을 통해 회생한 후에도 이런 기업문화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됐을 뿐이다.
예전의 골드만삭스는 이렇지 않았다. 1869년 뉴욕 한 지하실에서 채권매매업으로 문을 연 골드만삭스는 고객들을 이롭게 하면서 장기적인 이익을 꾀한다는 핵심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핵심가치를 바탕으로 130년동안이나 파트너십 형태를 유지하며 좋은 평판 속에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올 수 있었다. 파트너들에게 골드만삭스의 성공이란 단기적 실적이 아니라 더 튼튼한 회사를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뜻했다.
이런 문화가 180도 바뀌게 된 것은 1999년 기업공개를 하면서부터이다. 주주들의 존재는 빨리 이익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경영진에 안겨줬다. 주주의 이익이 고객에 대한 배려에 우선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단기 이익을 많이 내서 주가를 높이는 것이 최고의 선이 됐다.
이렇게 올린 단기 수익은 경영진에 엄청난 보너스로 돌아왔다. 주주들의 이익 욕구와 경영진의 보너스 욕구는 서로에게 되먹임 작용을 하면서 점점 더 커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부도덕한 판단이 끼어들기 시작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일이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이런 폐해를 들어 골드만삭스와 같은 기업들에 대해 기업공개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다소 파격적인 주장을 펴기도 한다.
스미스의 기고 후 비판여론이 거세지만 ‘돈만 아는 흡혈 문어’(한국과 미국 모두 탐욕스런 기업을 문어에 비유하는 것이 재미있다)라는 독설까지 듣는 골드만삭스의 체질은 쉬 바뀔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탐욕스런 문어’들의 일탈을 막을 수 있을까.
자발적으로 탐욕을 억제한다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이런 기대는 현실성이 별로 없다. 스스로 못한다면 타율적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 철저한 감독과 강력한 규제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금융시장이 탐욕적이고 부도덕하지 않았던 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만 금융시장의 도덕적 해이가 지금처럼 극심하지 않았던 1990년대 이전에는 감독과 규제를 통해 이것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던 것뿐이다.
또 과도한 리스크를 추구하도록 유혹하는 잘못된 보상시스템을 바꾸는 것도 시급하다. 손실을 낼 경우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지 않는 한 월스트릿의 부도덕은 사라지기 힘들다. 채찍은 거둔 채 당근만 줘서는 제대로 된 훈육이 이뤄지지 않는다. 거의 죽었다 살아난 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골드만삭스가 증거이다.
철저한 감독과 규제, 그리고 책임이 뒤따르는 보상시스템 같은 브레이크는 파멸을 향해 가는 속도를 늦추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브레이크가 잘 작동한 문명과 국가, 기업, 그리고 가문들은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부자 3대 가기가 힘들다는데 경주 최부잣집은 존경을 받으면서 무려 300년 동안이나 부를 누렸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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