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금이 사상 최고액으로 치솟으면서 미 전역을 로토구입 열기로 몰아넣었던 메가밀리언 광풍이 3명의 당첨자가 나오면서 일단락됐다. 당첨 확률이 번개 맞을 확률의 50분의 1도 안 된다는 로토에서 일확천금을 거머쥐게 된 당첨자들은 분명 행운아들이다. 요행을 기대하며 주머니 돈을 털었던 수많은 미국인에게 당첨자가 나왔다는 소식은 살짝 실망스럽다.
하지만 로토의 매력은 당첨 확률이 낮은 대신 리스크 또한 낮다는데 있지 않은가. 당첨 확률을 높이겠다며 수천달러를 쏟아 부은 사람들이야 속 쓰리겠지만 재미삼아 몇 달러 투자했던 사람들로서는 잠시나마 이런저런 달콤한 상상을 즐겼을 테니 크게 손해나는 투자는 아니었던 셈이다.
정작 로토의 리스크가 커지는 것은 당첨 이후이다. 그동안 실증조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이 유효하다면 이번에 단숨에 억만장자가 된 사람들은 앞으로 인생을 관리해 나가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남의 행운에 대해 악담 하거나 찬물을 끼얹으려는 못된 심사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가 그렇다. 멀쩡했던 사람이 횡재로 인해 망가지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로토를 구입할 때는 누구나 이것을 남의 일로 여긴다. 다른 당첨자들과 달리 자신은 이런 덫에 걸리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러나 당첨자의 절반 이상(어떤 조사에서는 90%라고도 한다)이 결국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로토광풍이 미국을 휩쓸었던 지난 주 ‘애틀랜틱와이어’지는 수천만 달러 이상의 로토에 당첨된 후 인생을 망친 미국인들의 슬픈 사례들을 보도했다. 사례를 보니 로토 이전부터 어느 정도 재산이 있고 신앙심도 깊은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들조차도 엄청난 행운이 찾아온 후 뒤틀리기 시작한 인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급격히 달라진 환경과 처지가 주범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비극성은 황재로 인해 맛보았던 환희와 짜릿함이 머지않아 사라진다는 사실에 있다. 로토를 살 때면 누구나 당첨 후의 자기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것은 우리 뇌의 전전두엽이 하는 자연스런 작용이다. 전전두엽은 비행기 조종사들이 시뮬레이션 훈련을 통해 실제 비행연습을 하듯 어떤 경험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정말 그런 일이 발생할 경우 잘 대처하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문제는 뇌의 시뮬레이션이 실제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로토를 사면서 “그 후로 쭉 행복하게 살았다”는 인생대본을 떠올린다. 그런데 막상 당첨되고 나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잠시 짜릿하기는 하지만 시뮬레이션을 통해 상상했던 지속적인 기쁨은 생기지 않는다.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신체 불구가 됐을 경우를 상상하면 뇌의 시뮬레이션으로는 일생 불행할 것 같다. 그러나 실제 이런 불행을 당한 사람들은 절망의 과정을 거쳐 머지않아 이전의 감정 상태로 돌아간다.
그래서 행복의 비밀을 연구해 오고 있는 다니엘 길버트는 “3억1,400만달러 로토당첨과 하반신 마비 사고라는 두 가지 경우를 상상해 보고 이 가운데 어느 경우가 더 좋은지 골라 달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물론 압도적인 선택은 로토당첨일 것이다. 그런데 길버트가 밝히는 놀라운 사실은 두 가지 일이 일어난 후 1년 뒤 로토 당첨자와 하반신 불구자의 행복 수준이 다시 엇비슷해 지더라는 것이다.
여기에 왜 횡재가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는지 그 이유가 들어있다. 예기치 못한 커다란 횡재는 일시적으로 짜릿함은 느끼게 해 주지만 그런 감정은 지속적이지 않다. 하지만 행복은 지속적인 감정이다. 그러니 로토당첨이 지속적인 행복감을 주려면 그런 횡재가 계속 이어져야만 한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또 환희의 봉우리가 높으면 공허감의 골짜기도 깊은 법. 엄청난 행운을 잡은 사람들이 종종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비극의 길로 가는 것은 지나치게 큰 횡재 후 뒤따르게 돼 있는 금단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애틀랜틱와이어’ 기사의 결론은 “꽝 로토 역시 감사할 일”이라는 것이다. 아주 잠시나마 행복한 상상을 즐긴 것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덤으로 행복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면 더욱 그렇다. 횡재의 비극성을 얘기하다 보니 문득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설경구가 목이 터져라 외치던 절규가 떠오른다. “나 다시 돌아갈래.”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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