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아이러니들 가운데 하나는 의도와 결과가 서로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살다 보면 선한 의도를 가지고 한 일이 아주 나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고 나쁜 의도로 저지른 일이 뜻밖에 선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의도와 결과의 비대칭은 개인들의 삶에서뿐만 아니라 국가가 시행하는 정책들에서도 흔하게 나타난다.
한국 19대 총선의 막바지를 뜨겁게 달구었던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이 터지게 된 계기는 이런 아이러니에 딱 들어맞는다. 그는 과거 인터넷 방송을 통해 정제되지 않은 표현으로 사회 부조리를 비판한 전력이 있다. 당시 같이 방송을 했던 한 연예인이 총선에 나온 김용민 후보를 응원한답시고 올린 한편의 동영상이 파문의 단초가 된 것이다.
동영상을 접한 상대 후보 측은 여기서 힌트를 얻어 그의 과거 방송을 뒤졌다. 그리고 문제의 막말들을 찾아냈다. 단 몇 번의 클릭만으로 선거판에 변수가 될 만한 호재를 건졌으니 이들로서는 횡재를 한 셈이다. 철없던 시절 생각 없이 한 말들이라고 해명하고 사과했지만 지워지지 않은 인터넷상의 흔적은 꼼짝달싹 못할 완벽한 증거가 돼 후보 자신과 소속 당을 옥죄었다.
김용민 막말 파문은 정치적 이해득실 차원을 넘어 디지털 시대에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이슈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인터넷은 뛰어난 유용성이 있지만 그 공간에서 던진 말과 글은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는다. 김용민 파문이 보여주듯 철없던 시절에 남긴 어두운 흔적은 언제든 타인의 손에 의해 부메랑으로 돌아와 나를 찌르는 칼이 되고 족쇄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디지털 시대가 낳은 역기능이다. 이런 문제로 인한 부작용들이 커지자 최근 유럽연합은 인터넷 사업자가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할 때 그 용도를 분명히 설명하고 개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며 개인이 정보 삭제를 요구할 경우 모든 개인정보를 완전히 삭제하도록 의무화 하는 보호지침을 마련했다. 이른바 ‘잊혀질 권리’ 법안이다.
잊혀질 권리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학자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터넷연구소의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 교수이다. 그는 인류의 역사에서 오랜 기간 망각이 일반적이었고 기억은 예외적이었지만 디지털 시대를 맞으면서 이제는 망각이 예외적인 일로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19세기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은 소수의 감시자가 다수를 완벽히 감시하면서 통제하는 ‘원형감옥’을 얘기했다. 인터넷은 마치 디지털 원형감옥처럼 그 안에 들어온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완벽하게 기록하고 보존한다. 이것은 끔찍한 일이며 그렇게 때문에 잊혀질 권리의 회복이 시급하다는 것이 쇤베르거의 주장이다.
망각의 가치와 관련한 시각은 유럽이 미국보다 진보적이다. 전과기록이 평생 따라다니는 미국과 달리 프랑스에서는 ‘망각의 권리’(right of oblivion)를 들어 전과자라 해도 형을 살고 일정기간 갱생과정을 거치면 이것을 지워주는 제도가 있다. 한 때 실수를 했더라도 모두 다 잊고 또 한번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 제도의 취지다. 유럽의회의 입법은 이 같은 정신의 산물로 보면 된다.
하지만 미국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미국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가 ‘잊혀질 권리’에 우선한다. 과거 인터넷에 띄웠던 사진 한 장 혹은 글 하나 때문에 불이익을 받게 된 많은 사람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있지만 미국 법원의 대체적인 입장은 이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또 잊혀질 권리를 법으로 보호해야 하느냐는 논쟁에 앞서, 여기저기 남겨 놓은 자신의 디지털 지문을 완벽히 지우기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정치인이자 법률가인 오바마 대통령은 몇 년 전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귀를 기울일만한 충고를 건넨 적이 있다. “많은 개인정보를 사이트에 올렸다가는 훗날 그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굴레가 될 수 있다.”
뒤늦게 후회할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자기보호책이다. 대중을 상대하고 그들로부터 평가를 받는 일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더욱 말할 나위 없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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