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6년 만에 발견된 광우병 소 한 마리 때문에 대한민국이 온통 시끄럽다. 다수 국민들은 4년 전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벌어졌을 때 정부가 내놓았던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던 약속을 들어 금지조치 시행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난 후 달라진 마음 때문인지 한국정부는 미적거리며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일부 보수 언론과 논객들도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는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수천만분의 1에 불과하다느니, 심지어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하고 동시에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는 등 광우병에 대한 두려움을 무지의 소치로만 몰아붙인다.
미국과 무역협상을 주도한 이력을 발판삼아 이번에 강남에서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방송과 인터뷰 하는 동영상을 보니 국민의 불안과 두려움을 얼마나 안이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젖소 한 마리 때문에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 같다며 “자동차 사고의 위험이 있다고 해서 운전을 안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의 지적처럼 사고가 무섭다고 운전대를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발언은 인간에 대한 몰이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두려움의 크기는 발생 확률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매년 수십만명의 미국인들이 교통사로로 사망한다. 광우병으로 죽을 확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위험이다. 하지만 우리는 운전을 하면서 두려움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훨씬 확률이 낮은 광우병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갖는다.
우리가 인식하는 위험의 크기는 실제 발생 확률보다는, 상황을 자신이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광우병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무지의 소산, 선동의 결과로만 몰아가려는 것은 올바른 대응이라 보기 힘들다.
광우병의 위험과 확률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과학적 근거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많은 한국인들이 지금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이 뭘 제대로 모르고 있다며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다면 진정으로 소통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로 볼 수 없다.
정부가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신뢰를 주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을 먼저 생각한다’는 ‘핵심가치’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지난 4년을 보면 핵심가치가 무엇인지, 또 그런 것이 과연 있기는 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핵심가치는 어떤 경우에도 변치 않는 절대적인 가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지키는 일에 이해득실의 계산이나 머뭇거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
10여 년 전 타일레놀 독극물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제조사인 ‘존슨 앤 존슨’은 사건이 알려진 후 단 5분 만에 전국의 모든 타일레놀을 리콜하기로 결정했다. 냉정하게 따져 본다면 독극물 사건은 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단 한 건의 행위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이 기업은 ‘고객을 먼저 생각한다’는 자사의 핵심가치에 따라 1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즉각 리콜조치를 취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소비자들의 신뢰가 한층 더 단단해졌음은 물론이다.
국가 역시 필요할 때는 이런 단호한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걱정하듯 소고기 검역을 중단하고 수입을 금지할 경우 우방인 미국의 심기를 자극하고 관계가 불편해 질 수 있다. 무역 마찰로 인해 경제적 손실이 뒤따를지도 모르다.
하지만 미국과의 불편과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핵심가치를 지키는 모습을 보일 때 국민은 안심하고 정부에 신뢰를 보내게 된다. 특히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것은 정부가 먼저 했던 약속 아니던가.
정부는 계속 과학적 사실과 확률을 들먹이지만 민심은 온전하게 이성의 영역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민심을 제대로 헤아리는 정치를 하기란 힘들다. 광우병 논란에서 인문적 소양이 부족한 현 정부의 한계가 다시 한 번 읽혀진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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