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향민(음성언어학자)
김치를 상품화하여 미국 주류사회에서 성공한 한 한인 사업가가 있다. 이런 이야기는 한국인에게는 감동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격세지감이다. 한국어에 마누라는 없어도 라는 말이 있다. 뒤에 오는 말은 경우에 따라 바뀐다. 나라가 잘 정비되어 있지 못했던 시절 도로포장이 잘 되지 않은 지역에는 비가 많이 오면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다.
한국인에게 김치는 아마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김치 없이는 이라는 말이 해당될 듯도 싶다. 한국인이면 거의 누구나가 김치 없는 삶의 질을 의심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느 나라 음식 중 끼마다 빠지지 않고 먹는 음식이 있을까 궁금하다.
한국인은 쌀을 주식으로 하면서도 때론 국수 종류가 또는 다른 음식이 끼니를 대체하는 경우가 있어도 이때도 김치는 빠지지 않는다. 며칠간 김치를 먹지 못하는 환경에 놓여본 한국인은 김치의 가치를 알게 된다. 오래전 김치를 거의 먹을 수 없는 나라에서 1년여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김치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했다.
물론 김치가 한국에서는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미국 등 외국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김치는 한국인에게 필수 음식이지만 외국 사람에게는 거부감이 있는 것이 한국인이 갖고 있는 굳은 인식이었다. 나는 미국에서 태어난 Janet이란 딸아이가 한명 있다. 그 애는 김치를 좋아했다.
10여 년 전 딸아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한국계 학생은 두 명 뿐이었는데 하루는 학교 런치에 도시락을 싸 달라고 했다. 첫날 샌드위치를 싸 주었더니 다음 날 내 염려와 달리 밥으로 바꾸어 달랜다. 나는 다음날 김치를 도시락에 넣었지만 딸아이가 놀림을 당할까봐 백김치를 만들었다. 그런데 저녁 딸아이는 왜 김치를 물에 헹구었나며 그대로의 김치를 요구했다. 그 날 저녁 딸아이에게 김치에 대한 친구들의 반응을 물었을 때 딸아이의 답변은 김치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크게 흔들었다.
친구들이 김치를 보며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입을 벌려 보라고 하고는 김치를 친구의 입에 넣었더니 맵다고 급히 물을 마시더라며 재미있었다는 듯 깔깔 웃었다. 나는 잠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아니 조금 혼란스럽기 까지 했다. 딸아이는 나의 복잡한 감정을 알지 못하겠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들어 알지만 한식의 세계화 속에 김치가 주목을 받는다고 한다. 김치의 시대가 오는 듯하다. 이는 딸아이 같은 자신감과 도전적인 한국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어진다. 어쩌면 이제 김치가 음악의 싸이처럼 세계화 되는 한식 문화 속 싸이가 될지 모른다. Go 김치, Go Ja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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