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만(목사)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의 시집 ‘순간의 꽃’ 에 적혀있는 시이다. ‘시’라기 보다는 한 줄의 잠언 같다. 시인은 마음의 비움을 예찬하고 있다. ‘비움의 마음’을 갖게 된 후 새롭게 보이는 자연 세계의 신비를 노래하고 있다.
그렇다. 마음을 겸허하게 비우면 세상이 새롭게 열린다.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것이 보인다.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도 새롭다. 그 안에서 고고한 영감과 지혜가 흘러나온다.
한편 이기주의와 탐욕에 길들어진 현대인은 꼭 아프리카 원숭이를 닮았다. 원숭이가 호리병 안의 밀을 한 움큼 쥐고 놓지 못해 사람에게 잡히는 것처럼 현대인은 무엇을 더 움켜쥐려고 몸부림치다가 덫에 걸려 고통당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장자의 우화 ‘목계(木鷄)’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기성자, 그는 싸움닭 만드는 유명한 조련사다. 하루는 왕의 부름을 받고 싸움닭을 훈련시키게 되었다. 왕이 물었다. “이제 준비되었는가?”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 제 기운만 믿고 허세를 부리면서 마냥 사납기만 합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다시 물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아직도 다른 닭소리를 듣거나 그림자만 보아도 곧 달려들어 싸울 듯이 흥분합니다.” 또 열흘이 지나 왕이 다시 물었다. “아직도 덜 되었습니다. 다른 닭을 보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데 그 눈이 교만과 아집으로 가득합니다.“
또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다시 물었다. ”이제는 거의 되었습니다. 다른 닭이 아무리 소리를 치고 덤벼도 전혀 동요함이나 자세의 흐트러짐이 없어서, 멀리서 보면 마치 나무로 만든 닭과 같습니다. 비움의 덕이 신비하고 위엄이 있기 때문에 다른 닭이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고, 보기만 해도 달아나고 맙니다.“
무슨 뜻인가. 싸움닭의 세 가지 수준을 얘기하는 것이다. 싸움닭 중에서 제일 하수(下手)는 마음속에 교만과 이기심이 가득하여 무턱대고 날뛰는 닭이다. 이런 닭은 한 번 제대로 싸워 보기도 전에 백전백패한다. 중수(中手)는 싸우기만 좋아하고 허세가 가득한 자다. 이런 닭도 승산은 없다.
마지막 최고의 고수(高手)는 어떤 상대가 나타나 덤벼도 한 치의 동요함이 없는 닭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나무로 만든 닭, 목계(木鷄)와 같다. 제 힘과 기술을 벗어나 마치 나무로 만든 닭처럼 마음을 비워 초연하고, 싸운다는 의식에서 조차 자유로운 닭이 고수(高手)다. 이런 닭은 누구와 싸워도 백전백승한다. 누가 새 역사를 일으키는가. 하늘 보좌를 떠나 풀잎처럼 낮아지신 예수님처럼 겸허하게 자신을 비운 사람이 새 역사를 일으킨다. 링컨의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문은 전부 272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5분짜리 연설문이다.
그런데 그 안에는 ‘나(I)’ 라는 단어가 한 자도 안 나온다. 놀라운 자기 비움이다. 이 비움의 정치로 링컨은 남북전쟁의 깊은 상처를 싸매고, 노에를 해방하고, 분열 직전의 나라를 구했다. 새 역사의 비전을 품고 출발하는 한국의 정부 지도자들이 이 사실을 깊이 새겨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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