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석 (음악박사)
음악대학교를 다니던 재기 발랄한 청춘시절, 가장 싫어하는 과목은 서양 음악사였다. 그 과목이 음악 역사여서 워낙 어렵기도 하였지만, 당시 공부라면 담쌓고 놀기 좋아하던 젊음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과목 중에 듣기 시험이라는 것이 있었다.
고전음악 60-70곡을 샘플로 주고 그중에 몇 곡을 골라 시험 중에 음악을 틀어주면 제목을 맞추는 것이었는데, 그래도 공부보다는 쉬워서 이것만 점수를 따도 F학점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러니 시험 때가 되면 그 당시 유행하던 마이-마이라는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허리에 차고 다니며 듣고 또 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음악 감상이 아니라 거의 고문이었다. 이런 식이었으니 말이다. “베토벤 운명은 빰빰빰 빠--.”모짜르트 40번 교향곡은 따라란 따라란 따라라라--.” 무조건 첫 머리만 외우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학교 앞 지하철역에서 내렸다. 다니던 학교에 지하철역은 지상에 있었기에, 꽤 긴 통로를 지나, 찻길과 통하는 계단을 내려와야 했다. 막 그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올 때 헤드폰에서 들리는 슬픈 음악, 피아노의 분산화음 그리고 바이올린의 탄식과 같은 두음, 이게 무슨 음악이지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멈춰 섰다. 그리고 갈 길을 가지 못하고 계단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봄 햇살은 눈 못 뜨도록 눈부셨고, 만발했던 벚꽃은 눈으로 내렸고, 수많은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지나쳐갔고, 그런데 그것들이 무슨 소용이었단 말인가! 나는 거기서 그렇게 계속 울고 또 울었다. 창피했냐고? 아니 따뜻하고 포근했다.
그 후 세월은 마치 앨범 속에 사진처럼 지나갔지만, 이상한 것은 그 음악만 들으면 언제라도 여지없이 그때 그 순간 그 장소로 돌아갔다. 어느 해 봄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울었지? 그래 맞다. 나는 그때 누군가를 참 많이 사랑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그렇게 울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울은 이유에 다 일까? 또 다른 어느 해 봄, 스스로에게 다시 물었고 하나를 더 알았다. 그때 나는 계단에서 그 곡의 작곡자를 만난 것이었다. 그도 그렇게 슬픈 사랑을 했었나 보다! 그래서 동병상련의 슬픔으로 서럽게, 서럽게 울었던 것이다.
봄이 또 지나가고 있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물론 봄은 오고 또 올 것이다. 그러나 올해의 봄은 다시는 오지 않는다. 그 먼 날 올해의 봄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을까? 그때를 위하여 내 젊은 날 들었던 그 음악을 남기고 간다.
‘베토벤 바이얼린 스프링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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