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에게는 과거 억울하거나 부당한 일을 당했던 경험을 기술하도록 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지루했던 경험을 떠올려 쓰도록 했다.
글쓰기가 끝난 후 연구팀은 꼭 들어주지 않아도 되지만 다른 설문에도 응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지루한 경험을 떠올렸던 그룹은 80% 이상이 승낙한 반면 부당한 경험을 떠올렸던 그룹은 61%만이 오케이 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은 기억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관대함과 너그러움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호된 시집살이를 경험한 시어머니라면 자신의 며느리에게는 같은 고통을 안겨주지 않을 것 같은데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오히려 자신이 당한 것 이상으로 며느리들을 괴롭히곤 한다. 시어머니의 뇌리에 남아 있는 피해의식은 시어머니로부터 어른다움을 앗아간다. 며느리 시절 겪었던 억울함이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오히려 가학적인 행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군대에서 고참에게 괴롭힘을 많이 당한 사병이 고참이 되면 한층 더 악랄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 한 주 미국 스포츠계를 달군 뉴스는 NFL 마이애미 돌핀스에서 발생한 고참에 의한 신참 괴롭힘 사건이었다. 베테런 오펜시브 라인맨인 리치 인코그니토가 2년차인 흑인 조너던 마틴을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인종모욕적인 협박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NFL 사무국이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가장 터프한 종목으로 꼽히는 프로풋볼에서 고참들에 의한 신참 군기잡기는 전통 혹은 관례로 여겨져 왔다. 고참들의 식대를 신참에게 떠넘기기는 보통이고 인간적으로 모욕을 주는 일도 흔하다. 신참 괴롭히기는 강인한 정신력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자행되는 만큼 암묵적으로 용인돼 왔다. 문제가 터지자 일부 동료 선수들이 인코그니토를 옹호하고 나선 것은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코그니토가 메시지를 통해 마틴에게 퍼부은 언사는 용인의 수준을 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인코그니토는 필요 이상의 위협적인 플레이로 몇 차례 징계를 받는 등 거칠기로 악명 높은 선수이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띄는 사실은 그가 한때 집단적인 괴롭힘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주 뚱뚱했던 거구의 인코그니토는 어린 시절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 피해자였던 그가 가해자로 바뀐 것이다.
‘폭력사회’를 쓴 독일의 시회학자 볼프강 조프스키는 폭력을 ‘인간의 유희거리’라고 정의했다. 폭력을 행사하면서 쾌락을 느끼는 본성이 우리 안에 내재돼 있다는 말이다. 강자에 의한 약자 괴롭힘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조프스키는 인간 본성에서 찾고 있다.
집단적인 왕따와 괴롭힘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들어 이런 행위로 고통 받은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급속히 늘고 있다. 괴롭힘의 피해자였다가 자신보다 더 약자인 대상을 발견하면 그를 괴롭힘으로써 자신이 받았던 피해를 보상받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 무수히 찾아 볼 수 있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가해자들을 조사해 보면 대개 이런 폭력의 피해자들이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가정폭력을 보거나 당하면서 자란 아이들은 이에 분노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이 저주했던 가해자를 닮아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힘이 없어 당한다고 생각하다 보면 자신을 강자로 둔갑시키려 애를 쓰게 되고, 대인관계를 이기느냐 지느냐의 관계로 인식하게 된다. 여기에 존중과 배려가 들어설 자리는 별로 없다.
약자에게 행해지는 폭력과 핍박이 비극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그것은 또 다시 잠재적인 가해자를 만들어 내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그렇게 본다면 인코그니토는 이런 비극적 악순환이 만들어 낸 희생자 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떤 부모이고 시어머니고 윗사람인가. 이런 악순환의 덧에 걸리지 않을 만큼 충분히 이성적이고 성숙한지 한 번 쯤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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