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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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지키기와 기부 등 공익을 위한 일에 헌신해 국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가수 김장훈이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한 고충을 털어놓은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지나치게 모범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지다 보니 그것이 압박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다른 연예인들이라면 그냥 넘어갈 만한 일도 반듯한 이미지의 연예인에게는 스캔들이 돼 버리곤 한다.
무명의 대법관 출신에서 국무총리를 거쳐 대권을 거머쥐기 일보직전까지 갔던 이회창. 그는 아들들의 병역문제 때문에 두 번이나 대선에 실패했다. 그의 문제는 지나치게 ‘대쪽’ 이미지가 강했다는 것이다. 대쪽 이미지는 그에게 일시적 성공을 가져다 줬지만 결정적 순간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이회창과 달리 이명박은 갖가지 의혹과 도덕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별다른 거부감 없이 가볍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가 당선될 당시 국민적 요구가 경제회생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명박 자신이 도덕성에 의지해 성공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애초부터 도덕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바른 생활 이미지로 비춰져 온 사람이 한 번 실수를 하면 그때까지 쌓아 놓은 이미지 자산은 삽시간에 무너져 내린다. 정치인일 경우 국민들은 속았다는 배신감까지 느끼게 된다. 도덕성을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우다 몰락한 정치인들은 상당수이다. 특히 진보진영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와 거리가 먼 인물들의 일탈은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여진다. 가령 집권 새누리당에서 새로운 도덕적 일탈이 발생해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야당은 날선 공격에 나서지만 국민들에게는 잘 먹혀들지 않는다. ‘차떼기당’ ‘성누리당’ 등으로 대표되는 반복된 스캔들에 국민들의 감각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사회학에서 ‘태도면역’이라 부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새 정치’ ‘상식의 정치’를 표방하며 독자세력화를 선언했던 안철수가 민주당과 전격 합당을 발표하자 매서운 비난과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그의 지지자들 사이에서조차 실망감이 표출되고 있다. 머리 좋은 안철수가 이런 반응을 예상치 못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현실정치의 벽을 뚫기 위해 이런 결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좋은 정치적 이상을 가지고 있어도 현실적인 힘과 수단을 손에 쥐지 못하면 그것은 무용지물일 뿐이다. 여권의 낙승이 예상되는 선거구도에서 안철수는 자칫 자신의 ‘새 정치’가 세상 구경조차 못하고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정치판의 ‘도덕적 자산’은 휘발성이 대단히 강하다. 이회창의 경우에서 보듯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리기 십상이다. 게다가 실질 구매력도 약하다. 도덕적 자산만으로 현실정치에 필요한 영향력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다.
사실 현실정치가 도덕성에 기반 하기 힘들다는 것은 수천년의 역사가 증언해 주고 있다. 플라톤은 완벽한 철학자에 의한 철인정치를 꿈꿨지만 그것은 단 한 번도 현실이 되지 못했다.
19세기 영국의 민법학자 윌리엄 브라이스가 자신의 책 ‘왜 훌륭한 인물은 대통령이 되지 못 하는가’에서 제기한 문제의식도 이것이었다. 브라이스는 인격과 도덕성이 뛰어난 인물이 국가 지도자가 되는 게 바람직하지만 정당정치와 파벌, 자금력 등으로 대변되는 이전투구의 현실정치 속에서 훌륭한 인물은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꿰뚫어 봤다.
안철수의 정치적 자산이었던 참신함과 클린 이미지는 너무 오래 지속돼 온 그의 모호한 태도와 이번 결정으로 거의 다 소진돼 버렸다. 하지만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겠다는 권력의지와 도덕적 자산은 어차피 병립하기 힘들다. ‘치열한’ 권력의지는 있어도 ‘고고한’ 권력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표현 자체가 형용모순이다.
정치판은 절대적으로 옳고 깨끗한 인물을 고를 수 있는 이상적인 시장이 아니다. 그런 인물은 아예 상품으로 나오기조차 힘들다. 그저 조금 더 낫거나 조금 덜 나쁜 인물을 뽑을 수 있을 뿐이다. 유권자들이 이 선택만 제대로 해도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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