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성 논설위원
▶ yoonscho@koreatimes.com
거의 지난 한달 동안 세계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뉴스는 단연 말레이시아항공 MH370 여객기 실종사건이었다. 실종과 관련한 온갖 설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일단은 여객기가 인도양에 추락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여객기가 왜 이곳까지 갔으며 어떻게 떨어진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자칫 영구 미스터리로 남을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객기가 실종된 이후 뉴스전문 채널인 CNN은 온 종일 기자들과 전문가들을 내세워 여객기 관련 보도와 분석을 내보냈다. 다른 뉴스들은 이 뉴스 하나에 묻혀버렸다. 여객기 추락 소식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는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다. 죽음에 관한 인간의 관심은 생래적이다. 게다가 이번 사고는 수많은 의문점들까지 던져주고 있다. 죽음과 미스터리만큼 뉴스 가치를 높여주는 조합은 찾아보기 힘들다.
비행기 사고에 대해 갖는 인간의 공포심은 비합리적일 정도로 크다. 우리가 암으로 죽을 확률은 남성의 경우 4명에 1명꼴, 여성은 5명에 1명꼴이다. 반면 여객기 사고로 죽을 확률은 1,100만분의 1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암보다 비행기 사고를 훨씬 무서워한다. 암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비행기 사고는 내 통제력 밖에 놓여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MH370이 실종 17일 만에 인도양에 추락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지면서 그동안 승객가족들이 갖고 있던 실낱같은 생존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이런 비통함은 말레이시아 정부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 가족들은 말레이시아 정부와 군 당국이 끊임없이 진실을 숨겨왔으며 이런 행동은 자신들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했을 뿐 아니라 수색작업을 지연시킴으로써 고귀한 생명을 구할 기회도 잃게 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사실 여객기 실종과 관련해 무수한 설과 발표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한 때 여객기가 어딘가에 착륙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섞인 추측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절박한 처지의 가족들에게 당연히 이런 추측은 놓을 수 없는 희망의 끈이 됐다. CNN은 이들의 고통을 ‘기다림의 트라우마’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17일 동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목을 매고 있던 가족들에게 인도양 추락 결론은 한층 더 지독한 절망감을 안겨줬을 것이다. 처음부터 추락으로 밝혀졌더라면 감당하지 않아도 됐을 혹독한 감정적 비용을 추가로 치른 것이다. 여러 추측성 보도와 말레이시아 정부의 무책임한 발표가 결과적으로 가족들에게는 ‘희망고문’이 된 셈이다. 희망고문이란 이뤄질 수 없는 일에 희망을 갖게 함으로써 더 큰 절망을 안겨주는 것을 뜻한다.
“진짜 절망은 헛된 희망을 동반한다”는 영화 ‘다크나잇 라이즈’의 대사처럼 희망이 오히려 끝 모를 절망의 근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베트남 전쟁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8년 간 포로수용소 생활을 한 후 석방돼 해군 3성 장군까지 오른 짐 스탁데일는 이런 얘기를 들려준다. “근거 없는 낙관과 비관을 오간 사람들은 감옥에서 견디지 못했다. 그들은 막연히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가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절망을 이기지 못해 죽었다.”
인공항문 수술을 받은 미시간주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생활만족도 조사에서도 희망의 두 얼굴이 확인된다. 환자 가운데 절반은 언젠가 원래의 항문을 사용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며 나머지 절반은 평생 인공항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6개월에 걸쳐 생활 만족도를 추적 조사했더니 놀랍게도 영구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만족도가 훨씬 높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희망이 적응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것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빨리 배울수록 삶은 본래의 궤도로 그만큼 빨리 돌아간다.
세상은 무조건 희망을 가지라고 주장질 하지만 희망은 때때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눈가리개가 되곤 한다. 올바른 희망을 갖는 것과 현실을 잘 인식하고 인정하는 냉정함 사이에서 균형을 잘 찾아 가는 것도 쓸데없는 감정의 소비를 최소화 하는 현명함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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