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브라이언 김 경영칼럼
▶ 터보에어 그룹 회장
2001년 9월11일 민간 항공기를 납치한 알카에다 조직원들의 테러공격으로 월드트레이드센터 두 건물은 화염에 휩싸여 무너져 내렸고, 3.500명 이상의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당했다.
구조를 위해 출동했던 343명의 뉴욕 소방관을 비롯한 37명의 항만 경찰국 요원, 23명의 뉴욕 경찰관, 8명의 응급의료 전문가들이 구조 활동 중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뉴욕 소방국 순직 소방관들의 명단을 보면 소방국 수장인 국장을 비롯한 최고위 간부 5명과 10명의 지역 소방서장이 순직했고, 그 외도 간부들의 이름이 유난히 많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두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건물을 탈출하는 절명의 상황에서, 화염에 휩싸여 무너져 내리는 건물 속으로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줄지어 뛰어들던 소방대원들의 장엄한 모습은 아직도 미국인들의 가슴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411명의 아까운 공무원들의 희생으로 얼마나 많은 시민을 구출했는지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으나,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짐작된다.
이는 경제적 논리로 본다면 분명 어리석다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에 있어 국민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깊은 물음과 함께 미국이 왜 초강대국인지를 알게 해준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사고가 있던 날 나는 한국에 출장 중이었다. 배가 기울고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2시간여가 지나는 동안 구조를 위해 배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선장과 선원들은 300명이 넘는 승객들을 침몰중인 선박에 내버려둔 채 자신들만 빠져나와 뻔뻔스럽게 구조선에 올랐다. 선박의 가장 아래에 있었던 기관사들이 빠져나와 모두 생존할 수 있었음은 승객들 전부를 구출할 시간이 충분했음의 반증이다.
더욱 실망스러운 점은 초기 현장에 출동했던 해경들 중 누구 하나 용감하게 선박으로 들어가 승객들의 탈출을 유도하거나 한사람이라도 구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사실보다, 희생자들을 살리기에 충분한 2시간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단 한 명의 승객도 구조하지 못했다는 현실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911 테러 공격을 당했던 미국에서는 구조할 가능성이 희박함에도 소방관들이 목숨을 걸고 사지로 뛰어들었고, 한국에서 발생한 세월호 사고는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허둥대고 몸만 사리다 단 한 명의 승객도 구조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게 됐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 오게 하는 걸까?
첫째는 지휘관의 무능과 책임의식 결여다. 위급한 상황에서 지휘관의 모범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뉴욕 소방관 희생자들 중 유독 계급 높은 사람들이 많은 건 위험한 지역엔 지휘관이 ‘먼저 들어가고 가장 나중에 나온다’(first in, last out)는 미국의 규칙과 전통 때문이다.
둘째는 지속적인 훈련이다. 대다수 보통사람들은 위급한 사항에 처했을 때 육체적 본능으로 위험을 피하게 된다. 그래서 특수한 업무를 수행하는 전문가들은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도록’ 끊임없이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훌륭한 대응 매뉴얼을 갖추고 있어도, 위급 때 본능적으로 행동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평소 훈련과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다 사고를 낸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들이 보여줬던 용감하고 책임 있는 행동이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역사적 대부분의 참사는 비상식적일만큼 사소한 원인으로 발생한 경우가 많았다. 이번 사고도 정상적인 복원력을 갖고 있는 선박이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선박의 크기에 비해 속도가 빠르지 않아 설계상 최대치 급선회를 시도해도 뒤집어 지는 건 이론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조사를 진행하면 더 정확한 사고 원인이 밝혀지겠지만, 평소에 무시하고 간과했던 작은 실수들이 누적돼 돌이킬 수 없는 참사를 불러왔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경영자들은 다시한번 주변을 면밀히 돌아보고 안전에 관한 경계심을 더욱 높여야 한다.
사고로 희생된 분들의 영면을 삼가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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