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성 논설위원
▶ yoonscho@koreatimes.com
얼마 전 도전과 기회를 찾아 세계 각국에서 취업한 한국 젊은이들을 소개하는 한 TV 프로그램에 일본의 어떤 스포츠 용품 회사에 취업한 청년의 스토리가 방송됐다. 이 청년은 고교를 졸업한 후 한국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일본으로 건너 가 일본어를 배우고 그곳에서 대학과정을 마쳤다.
그가 대학 졸업 후 취업한 회사는 상당히 유명한 스포츠 용품 기업이었는데 그가 이력서와 함께 제출한 토익 점수는 850점이었다. 그런데 인사 담당자들이 그의 점수를 보고는 “영어 실력이 상당히 뛰어나군요”라며 놀라는 표정을 짓더라는 것이다. 청년은 “한국에 있었더라면 인사 담당자의 눈에 띄지도 않았을 점수인데 일본에서는 대접 받았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취업 준비생들이 토익 점수에 목을 매면서 한국 취업 지망생들의 평균 점수는 매년 상승해 이제는 최소 900점은 돼야 명함을 내밀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 취업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높은 학점과 토익 점수, 해외 어학연수 등 과거에는 경쟁력 있는 스펙으로 간주되던 조건들이 이제는 그저 기본으로 여겨진다.
‘보통’은 특별하지 않고, 흔히 있어 평범하다는 것을 뜻한다.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열등하지도 않은 상태를 말한다. 가장 흔한, 그래서 수적으로 가장 많은 범주가 보통이다. 웬만큼만 노력하면 보통이 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상황이 달라졌다. 보통의 기준이 점점 올라가면서 이것을 따라가기가 날로 버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루이스 캐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편으로 쓴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거울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거꾸로이다. 그래서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며 저절로 뒤로 처진다. 앨리스가 이것을 푸념하자 붉은 여왕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 네가 앞으로 나가고 싶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뛰어야 할 걸.”제자리를 지키려면 열심히 앞으로 나가야 하는 이런 역설을 ‘붉은 여왕 효과’라 부른다. 시카고 대학의 진화생물학자인 밴 베일른이 생태계의 쫓고 쫓기는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이 용어는 보통 되기가 날로 힘들어지고 있는 요즘 시대를 아주 적절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해지고 사회 모든 분야의 보통 기준이 높아지면서 자신만 낙오되고 있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사회의 기준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 가지 지표들이 나아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데도 만족감은 별로 늘어난 것 같지 않다.
한국의 국민소득이 2만5,000달러를 넘어섰지만 수천달러 시절보다 더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높아진 소득 수준이 이제는 보통이 됐을 뿐 아니라 주위의 훨씬 더 잘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또 부익부의 속도와 규모가 날로 빨라지고 커지면서 평균 소득군에 속하는 것도 그리 쉽지 않다. 이런 현상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보통의 대열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면 이를 악물고 뛰어야만 하는 세상이 됐다. “허리가 부러져라 일해야 겨우 남들처럼 먹고 산다”는 한 소설 속 주인공의 푸념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낙오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면 현실을 좀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이런 강박은 보통의 객관적 기준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심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소득과 학력, 스펙 등 모든 면에서 보통의 기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당신은 여전히 보통 수준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소득과 관련한 의식조사를 해 보면 경제적으로 남들만큼 사는 데도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중간에 속해 있음에도 다른 이들에 크게 뒤처지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 ‘객관적 보통’과 ‘심리적 보통’을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상당한 감정적 에너지가 소진된다.
당신이 여러 가지 면에서 보통 수준이고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면 충분히 잘 하고 있는 것이다. 남과의 비교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삶의 방향성이 분명하고 확고하다면 더 바람직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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