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노인 빈곤율 20.4% 아시아계 중 가장 높아
▶ 성공 극심한 스트레스 청년층·여성 자살 급증
한인 등 아시아계는 높은 교육열로 명문 대학에 진학하고, 잘나가는 직장에 취업해 높은 연봉을 받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며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한 ‘모범적이고 성공한 소수계’(model minority)로 인정받고 있어, 미국 사회에서 비교적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미국인의 대졸율이 30% 정도인 반면, 절반이 넘는 아시아계가 대학을 졸업하고, 소득도 백인을 비롯한 전체 인종 그룹 중 가장 높아 ‘아시아계 성공신화’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단순 통계 수치의 이면에는 아시아계의 또 다른 모습이 존재한다. 아시아 성공신화가 부각된 만큼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으며 그 이면에는 더 복잡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모델 마이너리티’로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한 소수계로 인정받고 있는 아시아계 성공신화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아시아계 성공신화는 편견?
모범적이고 성공한 소수계란 의미로 아시아계는 ‘모델 마이너리티’로 불린다. 하지만, 이같은 인식이 아시아계에 편견이나 차별일 수 있다는 각성이 최근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AASA와 같은 아시아계 학생 단체가 ‘모델 마이너리티’ 프레임을 거부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고, ‘모델 마이너리티’가 허구에 가깝다는 지적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전국아태계평의회(NCAPA) 크리스토퍼 강 내셔널 디렉터가 대표적이다. 강 디렉터는 아시아계가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인식은 편향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강 디렉터는 “교육과 빈곤 문제는 아시아계 내부에서 민족마다 편차가 커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의 단순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시아계가 상당하다”고 지적한다. 캄보디아계나 몽족은 대졸자 비율이 20%에도 미치지 못한 반면, 한인은 50%가 넘고, 인도계는 72.5%가 대졸자일 정도로 격차가 심하다. 아시아계의 빈곤 인구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으며, 아시아계 노인의 빈곤은 백인의 2배 이상 심각하며, 출신국가에 따라 빈곤율이 40%에 육박하는 아시아계도 있다.
강 디렉터의 지적과 같이 여전히 많은 아시아계가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며 가난에 시달리고 있지만, 미국인들은 아시아계를 말할 때 이런 모습을 좀처럼 떠올리지 않는다.
아시아계가 미 경제의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는 것도 선입견에 가깝다. 포춘 500대 기업의 이사들 중 아시아계는 2.6%, 고위 임원은 2%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편견이 빈곤 실상 감춰
아시아계 빈곤이 타인종이나 미 전체에 비해 낮다는 인식은 왜곡에 가깝다. 백악관이 밝힌 통계에 따르면, 아시아계 빈곤율은 12.6%. 이는 미 전체 평균 12.4%보다 0.2% 포인트가 오히려 높다. 하지만, 이 수치도 아시아계의 빈곤 실상을 드러내주지 못한다.
‘전국 아태계 커뮤니티 개발연대’(NCAPAC)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4년간 아태계 빈곤 인구는 38%가 증가했다. 이는 히스패닉의 42%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것이다. 또, 미 전체 빈곤 인구 증가율 27%보다 11%포인트나 높은 것이어서 아시아계 빈곤인구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기간 아시아계 빈곤 인구는 50만명이 늘었다. 가같은 가파른 빈곤 인구 증가추세는 단순 빈곤율 수치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한인 빈곤율은 13.9%로 이보다 더 높다. 이 기간 한인 빈곤 인구는 5만 2,715명이 늘어 한인 빈곤 인구는 22만2,000여명에 달한다. 민족별 편차도 심해 몽족은 빈곤율이 무려 37,8%에 달하고, 캄보디아와 베트남계도 각각 18.5%와 16.5%로 평균에 비해 매우 높다.
◆아시아계 이중적 모습
UC 리버사이드 공공정책학과 카르식 라마크리쉬난 교수는 소득과 빈곤에 관한 통계는 아시아계 커뮤니티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고임금 기술직에 종사하는 고소득 아시아계가 있는 반면, 저소득 단순 노동에 종사하거나 실업상태로 가난에 허덕이는 아시아계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아시아계가 7만2,000달러의 높은 가계소득을 보이는 이유도 드러난다. 아시아계는 가족 구성원이 평균 3.5명으로 미 전체 평균 2.58명, 백인 평균 2.46명에 비해 훨씬 많아 소득액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성취 역설’이란 저서의 공저자인 UC 어바인 제니퍼 리 교수의 분석도 유사하다. 리 교수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높은 가계 소득 또한 한 번 걸러서 이해해야 한다”며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외삼촌 등 3대 이상이 대가족을 이뤄 사는 경우가 많아 가계 소득이 높게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실질 빈곤율 16.1%, 백인의 1,6배
아시아계의 비교적 낮은 빈곤율도 거주지와 생활비 등을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실제 빈곤율은 이보다 훨씬 높다는 분석도 있다.
미 경제정책연구소(EPI)의 분석에 따르면, 2013년 아시아계의 단순 빈곤율은 13.8%로 10,9%로 조사된 백인에 비해 3.9%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거주지와 생활비를 감안해 조정한 수치는 이보다 높아져 실제 빈곤율은 16,1%에 달했다. 이는 조정을 통해 오히려 빈곤율이 낮아진 백인의 10.4%에 비해 1,6배 높은 것이다.
◆성공 스트레스 극심, 청년층과 여성 자살 급증
2014년 4월 한 달간 미 명문 대학에 재학 중인 한인 등 아시아계 학생 3명이 연이어 자살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당시 보스턴 대학 3학년이었던 한인 K군이 기숙사에서 목을 메 자살했고, 하버드대 경제학과 학생이던 A군은 투신자살했다. 이어 컬럼비아대 치대에 다니던 J 양의 자살한 시신으로 뉴욕 허드슨 강변에서 발견됐다. 이 사건 이후 미 언론은 우수한 아시아계 학생들이 성공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인 등 아시아계를 ‘모델 마이너리티’로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편견과 가족 등 커뮤니티 내부의 보이지 않는 압박이 심각해 똑똑한 수재라는 선입견에 부응하지 못하면, 실패자라는 부당한 낙인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건강통계센터(NCHS)도 아시아계의 자살률이 ‘아메리카 인디언’을 제외하면 전체 인종 그룹 중 가장 높았다며 이는 ‘모델 마이너리티’라는 스테레오타입을 벗지 못한 스트레스가 이들을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14년 미 질병통제센터 따르면, 자살이 아시아계 청장년층 사망원인 중 상위를 차지해 10대와 20대 사망원인 중 두 번째 원인이었고, 3,40대에서는 네 번째 주요 사망원인이었다.
젊은 여성들의 자살은 더 심각하다. 2012년 NCHS 보고서에 따르면, 15~25세 아시아계 여성들 중 실제 자살을 한 사례는 10년간 93%가 증가해 이 연령대 사망원인 중 두 번째를 차지했다. 또, 자살을 고민하는 아시아계 여성은 6명 중 1명으로 조사돼 10명 중 1명 꼴로 나타난 백인과 흑인에 비해 높았다.
◆노인 빈곤은 더욱 심각
미 은퇴자 연합회(AARP)가 지난 2014년 펴낸 ‘아태계 노인들의 재정상태 보고서’는 아시아계 노인 빈곤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 지 보여준다. 65세 이상 미국 노인의 9.5%가 빈곤 상태인 것으로 나타난 반면, 한인 등 아시아계 그룹별 노인 빈곤율은 2배 이상 빈곤율이 높았다.
이 조사에서 한인 노인의 빈곤율은 20.4%로 나타나 주요 아시아계 그룹 중 가장 높았다. 이어 중국계 18%, 베트남계 16.4% 등 대다수 주요 아시아계가 미 노인 평균 보다 빈곤율이 높았고, 평균 빈곤율 보다 낮은 경우는 일본계(6.2%), 필리핀계(7%), 태국계(7.8%), 인도계(8%) 정도에 불과했다.
소셜 시큐리티 인컴 수준도 아시아계는 평균에 못미쳤다. 미 노인 평균이 1만 893달러인 반면, 한인은 7,170달러에 불과했고, 가장 높은 일본계도 1만 867달러로 평균 이하였다.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캄보디아, 몽족계 등은 5,000달러에도 못 미쳤다. 노인 가계 소득도 크게 낮았다. 한인 노인은 2만1,382달러로 미 노인의 3만3,906달러보다 1만2,000달러 더 낮았고, 대다수 아시아계가 평균 이하였다.
◆모델 마이너리티 편견, 또 다른 차별
‘모델 마이너리티’라거나 ‘아시아계 성공의 신화’가 불평등 상황을 강화한다는 우려도 있다. 경제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성공한 커뮤니티여서 타 소수계에 비해 도움이 절실하지 않다는 인식이 팽배해져 정부나 기관의 지원이 아시아계에는 인색하다는 것이다.
강 디렉터는 “지난 25년간 아시아계 커뮤니티에 대한 정부나 단체 등의 지원은 전체 소수계 커뮤니티의 0.3%에 불과한 현실은 편견이 진실을 가려 또 다른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성공한 ‘모델 마이너리티’라는 선입견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는 강력한 ‘족쇄’가 될 수 있다. 평균치나 보통 수준을 훨씬 뛰어넘지 않으면 ‘성공’으로 인정하지 않는 차별이나 부당한 스트레스와 좌절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김상목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