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그피시‘곰상어’·라이언피시‘바다 가물치’·죠나 크랩…
▶ 대구 등 인기 어종 고갈되자 ‘쓰레기 생선’서 신분상승, 생선꼬치로 젊은층에 인기
메인주 포틀랜드 수산시장에 걸린 레드피시.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생선에도 등급이 있다.
대구, 참치, 해덕, 새우 등 소비자들의 수요가 높은 어류가 대접을 받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반면 등급 사다리의 맨 아래쪽에 위치한 어류들은 찬밥신세다. 워낙 수효가 많아 그물을 던질 때마다 주렁주렁 달려오지만 대부분 다시 바다로 던져진다. 종류가 다양하고 고유이름도 갖고 있지만 어부들은 이들을 한데 싸잡아 ‘잡어’라 부른다. ‘쓰레기 생선’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 수산업의 중심지인 뉴잉글랜드 지역이 어획량이 줄어들고 소비자들의 수요가 높은 어종이 고갈위기를 맞으면서 반사이익을 취한 잡어들의 몸값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바다의 쓰레기인 ‘천민’에서 한 단계 높은 ‘상것’으로 신분상승을 이룬 대표적 잡어로는 도그피시(dogfish)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곰상어라는 ‘한국이름’을 지닌 도그피시는 밀레니얼 세대의 ‘피시 스틱’으로 서서히 주가를 올리고 있다.
40여년 전 한국의 쥐치가 그랬던 것처럼 이름값이 달라진 셈이다.
기나긴 시간 어부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던 쥐치가 포로 만들어져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듯이 쓸모없는 잡어였던 도그피시도 깔끔한 맛의 ‘생선꼬치’로 다듬어져 뉴잉글랜드 지역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매서추세츠에 위치한 ‘입스위치 셸피시’의 판매담당 책임자 다나 바톨로뮤는 글루텐을 입힌 도그피시 꼬치인 ‘샤크 바이트’가 뉴잉글랜드 지역 대학가에서 급속한 수요증가를 보이고 있다며 “북동부 해안지대 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잡어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추세”라고 밝혔다.
상어과에 속한 도그피시는 동부해안지역 어부들이 매년 수백만 파운드씩 건져내는 어종이지만 워낙 찾는 사람이 없어 공식적인 적정거래가격 조차 형성되지 않은 채 파운드당 몇 페니에 팔리던 ‘별 볼일 없는 생선’이었다.
하지만 미국 전역의 마켓에서 도그피시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재수 없는 잡어’라는 오명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수산업계는 시장성이나 경제적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외면해온 잡어들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주요 수산물로 간주되는 대구, 참치, 해덕과 새우의 어획고 감소와 어획쿼터 축소가 불러온 현상이다.
바톨로뮤는 “현지 어부들과 수산업계 및 로컬 경제를 지원할만한 맛있는 상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도그피시는 이 지역에서 풍부하게 잡히는 어종”이라고 지적했다.
공급도 문제가 없고, 가격도 싼데다 꼬치구이로 만들면 맛도 괜찮기 때문에 대체 인기어종으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물론 뉴잉글랜드 주민들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생선은 대서양산 대구였다. 하지만 과도한 남획과 환경변화로 대구의 수효는 크게 감소했다.
식당업주들과 어부, 식품가공업체들은 이로 인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대구를 대체할 다른 어종을 찾아야 했다.
우연찮게 이들은 대구의 대안을 잡어에서 찾았다.
10년 전부터 대구 어획고가 감소한 반면 가시가 많은 도그피시와 아카디안 레드피시, 스컵 등의 어획량은 극적으로 증가했다.
이른바 ‘고급 생선’에 길들여진 입맛이 잡어에 적응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새롭고도 신선한 맛에 익숙해지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다.
대구 가격이 뛰고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풍부한 대체 단백질원을 거부하기 힘들다.
잡어로 무게추가 이동한 것은 미국 전역에서 판매되는 해산물의 판도에 변화가 생긴 것과도 일치한다.
그로서리 마켓의 어물전에는 이전에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잡류 어종이 상당수 진열되어 있다.
식탁위에 오르는 잡어가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가하면 ‘잡어 잡이’ 어부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지역도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한 예로 플로리다주 어업 감독국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라이언피시 ‘사냥’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쏠배감펭이라고도 불리는 라이언피시는 상어도 죽인다는 독침으로 무장하고 있다.
아름다운 생김새와 색깔로 애완동물 삼아 기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잘못 손댔다가는 억센 가시에 찔려 무시무시한 고통을 당하게 된다.
플로리다 주정부의 보조금 탓에 라이언피시 어획고가 늘어나자 어부들은 처치곤란한 ‘바다의 가물치’를 헐값에 대량공급하기 시작했고, 지역 주민들의 관심도 조금씩 높아지는 추세다.
서부해안지대 식도락가들의 사랑을 받는 왕게 던저너스 크랩의 대안으로 죠나 크랩이 부각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잡어에서 해산진미로 탈바꿈한 케이스는 수세기 전에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다가재, 즉 랍스터다. 랍스터는 오랫동안 하층민들이나 먹는 천한 해산물로 여겨졌다. 사실 랍스터는 모든 사람들이 혐오하는 바퀴벌레와 같은 과에 속한다.
바다가재처럼 상당수의 어종은 추한 이름, 혹은 기괴한 외모를 극복하고 몸값을 크게 띄워 올리는데 성공했다.
물론 수요가 없는 생선의 가치를 끌어내는 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해산물을 취급하는 어물전과 식당들도 잡어를 식탁에 올리는데 만만치 않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소비자들이 ‘이름 모를 생선’을 멀리하는 이유 중에는 잠재적인, 혹은 명백한 ‘건강상의 위험’도 포함된다.
도그피시의 경우 몸 안에 높은 수준의 수은이 들어있기 때문에 임신부나 어린이들은 가급적 섭취를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수질 오염으로 인해 대부분의 생선은 몸 속에 유해 중금속인 수은이 쌓여있다.
물론 중금속 오염은 잡어에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회감으로 인기가 높은 참치도 임신부에게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잡어가 새로이 조명을 받는 이유는 자명하다.
포틀랜드 수상식당인 ‘디밀로스 온 더 워터’의 셰프인 멜리사 보카드는 “수온상승과 이에 상응하는 어류개체군(fish populations)의 변화 때문에 활용도가 처지는 어종의 시장을 창조하는 것은 뉴잉글랜드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일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시장 창조는 대구와 해덕, 동북부지역 새우 등 인기 어종에 맞춰진 초점을 떼어놓고 맛있고 공급도 충분한 메인만(Gulf of Main)의 특산 어종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보카드는 이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식도락가들의 메카인 포틀랜드의 페스티벌에서 도그피시 타코를 선보여 호의적인 반응을 끌어냈다고 말했다.
물론 쓰레기 생선을 향한 움직임에 불만을 터뜨리는 회의론자들도 없지 않다. 그들 중 일부는 “광범위한 시장을 갖고 있는 주요 어종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는 주장은 헛소리”라고 일축한다.
워싱턴대학의 해양생물학자인 레이 힐번은 “일부 인기 어종의 어획고를 충분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잡어를 대체어종으로 띄우는 것은 허튼 수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생선의 지속적인 공급이 가능하지 않다고 믿는다면 실제 상황을 전혀 모르는데다 제대로 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몰아쳤다.
그는 뉴잉글랜드 해역에서 대구나 해덕, 참치, 새우 등 인기 어종의 수가 급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지구촌 전체로 볼 때 이들의 어획고는 충분한 수준에서 유지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로드아일랜드대학 해양자원센터의 수산업전문가 아주어 시클러는 ‘덜 사랑받는 어종’으로의 이동은 어업을 지탱하고 뉴잉글랜드 주민들에게 로컬 단백질원을 제공하는데 있어 결정적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포기(porgy)라고 불리는 대서양 어종인 스컵의 어획고가 2000년의 300만 파운드에서 2014년에는 1,500만 파운드로 늘어났으며 지금은 홀푸즈가 광고까지 내가며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주어는 이 생선이 좀 더 매력적인 이름을 갖는다면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확신했다.
그녀는 포기의 새로운 이름으로 실버 배스를 추천했다. ‘서머타임’에 나오는 노래 ‘포기와 배스’를 염두에 둔 이름이다.
아주어는 “많은 사람이 개명을 요구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며 “포기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 어부들은 더 많은 양을 공급할 것이고 우리의 음식문화를 바꾸어가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AP 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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