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 삼월이 며칠 남지 않았다. 기나긴 겨울이 이젠 다 가고 온 누리에 아지랑이 피고 새싹이 움터 나오는 화창한 봄날을 맞게 될 거다. 자연의 돌아가는 이치와 하늘의 법칙을 그 누가 막을 수 있으랴. 허긴, 겨울이 없는 남쪽의 따뜻한 땅들도 있긴 하다만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사계절의 순환은 어김없이 돌고 돈다.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 오시는고/ 임 찾아 가는 길에/ 내 집 앞을 지나시나/ 이상도 하오시다/ 행여 내게 오심인가/ 미안코 어리석은 양/ 나가 물어 볼까나”
홍난파 작곡, 이은상 작사의 ‘봄 처녀’다. 봄, 님이 찾아오는 따스한 계절이다. 또 만물이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기개를 다시 펴고 새로운 봄날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의 몸과 마음을 활짝 열어 놓을 때다. 추운 겨울, 겨울등산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등산을 못 했을 거다. 봄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오르지 못했던 산에도 올라가서 산에 퍼지는 봄기운을 만끽하며 즐기는 때다.
일 년에 딱 한 번 피는 꽃들이 봄기운을 받았는지 하나, 둘, 피기 시작한다. 선인장과에 속한 화초로 집에서 돌본지가 십여 년이 되었다. 이 꽃들은 일 년 내내 전혀 필 것 같지 않다가 꼭 요맘때가 되면 피기 시작하여 약 한 달간 피고지고를 계속한다. 실내에서 키우는 화초인데도 만물의 기운이 감도는 봄을 감지하나 보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잎들에 새겨진 색상을 보면서 신의 입김을 느낀다. 도저히 사람의 손길로 만들어낼 수 없는 화려함이기에 그렇다. 그래도 겸손히 피어났다 다시 겸손히 떨어지는 꽃들의 속마음. 아주 작은 꽃이지만 인간이 근접할 수 없는 자연의 신비가 가득 들어있다. 이 꽃이 피어나는 봄이 되면 꽃 속에 저절로 빠져든다.
과학이 제아무리 발달한 지금, 아직도 인공으로는 꽃을 피우지 못한단다. 자연의 섭리만이 작은 꽃을 피운다. 사람은 꽃에 혹은 화초에 물만 줄 뿐이다. 화초를 키우고 꽃을 피우는 것은 햇빛과 바람과 시간의 몫이다. 봄이 되면 들길에서도 아주 작은 꽃들이 피어나 지나가는 길손을 반긴다. 작은 꽃 속에는 신의 손길이 숨어 있다.
솔로몬의 영광이 이 꽃 하나만도 못하다고 한 성서기자의 외침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부귀와 영화가 하늘을 찌른들, 무슨 소용이랴. 봄날, 들길 옆에 이름 없이 피어나고 있는 들꽃보다도 못할 수가 있는데. 꽃이 잠시 세상에 태어났다 다시 온 곳으로 가는 거랑, 인간이 잠시 태어났다 가는 거랑 무슨 별 차이가 있겠나.
“나무에 새싹이 돋는 것을/ 어떻게 알고/ 새들은 먼 하늘에서 날아올까/ 물에 꽃 봉우리 진 것을/ 어떻게 알고/ 나비는 저승에서 펄펄 날아올까/ 아가씨 창인 줄은/ 또 어떻게 알고/ 고양이는 울타리에서 저렇게 올까”
김광섭의 ‘봄’이다. 봄이 오는 소리에 온갖 새들이 재잘거리며 합창을 즐긴다. 그래,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니까 그렇겠지. 봄만 되면 어릴 적 친구들과 뒷산에 올라가 진달래꽃을 따먹고 뒹굴던 기억이 난다. 야산의 진달래꽃. 이제 그 친구들은 하늘나라 간 친구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되어 손주들 뒷바라지들을 하고 있을 게다. 그래도 그 땐 너무도 좋았지. 진달래 먹고 고추잠자리 쫓아 온 산을 해매도 조금도 지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었기에.
봄 처녀 오시는 데 맞을 준비를 해야지. 움츠렸던 기개를 펴고 두 손 벌려 맞아야지. 겨우내 웅크렸던 좌절, 낙담, 실망, 비관, 오해, 고통 모두 벗어버리고 희망으로 맞아야지. 신의 입김과 자연의 섭리로 찾아오는 봄 처녀, 싱그럽게 맞아야지. 새 풀 옷 입고, 하얀 구름 너울 쓰고, 꽃다발 가슴에 안고 찾아오는 봄 처녀, 활짝 반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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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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