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로 시작된 나의 음악 수업 은 바이올린을 거쳐 첼로라는 악기로 정착이 되었는데 그 수업은 어림 잡아 한 다섯살부터 시작되었던 듯 하다. 수십 년 고전음악을 하면서 어려움과 좌절은 참으로 많았지만 단 한 번의 후회나 포기 없이 끝내 이 길을 걸어온 것을 감사히 생각한다.
열살 무렵이었던 듯하다. 음악가로서 평생을 살겠다고 결심한 것이. 아 홉 살짜리 아이를 기르고 있는 입장 에서 열 살 무렵에 자신의 인생의 길 을 결정하였다는 사실은 스스로도 잘 믿어지지 않는 일인데, 생각해 보 면 그 계기가 된 것은 한국에 내한 한 어느 피아니스트의 베토벤 연주 를 보고서 였던 듯하다.
어린 나는 그 절대음악의 매력에 정신을 잃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갈망을 가 졌었다. 그 어린 나이에 무엇을 알았다고. 하지만 어린 나를 매료 시켰던 것은 단지 화려한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 트만은 결코 아니었다. 아마도 무지하 게 조숙하고 좀 사색적인 면을 다분 히 지니고 있던 아이였던 나는 지난 수세기의 음악을 통해 전달되어 오는 정중함과 고귀함 그리고 숭고한 인간 정신과 감정을 경험하고는 그대로 그 에 복종해 버렸던 모양이다.
베토벤은 이와 같이 높은 정신을 자신의 음악을 통하여 만인에게 전 달하는 것을 일생의 사명이라 여겼 다. 도덕성을 무엇보다도 가장 뛰어 난 가치로 여겼던 그는 그의 작품 을 통하여 불굴의 의지로, 열정으 로 투철하게 살아가는 정신을 그려 내었다. 현대음악의 조성 파괴가 도래하기 이전 서양음악은 이와 같이 형식이 라는 틀 안에서 고귀한 정서와 규범 을 정중하게 전달한다. 물론 음악이 담는 것은 고귀한 것들만은 아니다. 퇴폐성이나 탐미, 감각적인 인간 본 연의 것들 역시 여과 없이 전달된다.
그러나 그 감각의 추구에도 투철함 이 있다. 그것이 고전음악의 힘이다. 현대가 가지고 있는 가장 치명적 약 점 중 하나인 편리함과 온전히 거리 가 먼 그러한 투철함이다. 그 시대의 위대함을 현대의 우리 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도덕률 도 영원한 것도 말살시켜버린 오늘의 우리는 어떤 가치와 어떤 절대성에 의지하여 살아가야 하느냐 말이다.
절대적 가치가 사라져 버린 지 오래, 선과 악의 경계도 가치 판단도 모호 해 진 오늘 듣는 이의 마음에 정공법 으로 다가 오는 지난 세기의 거장들 의 음악은 흐트러진 현대인의 정신 을 바짝 세우는 경종의 소리이다. 스마트 폰과 게임에 빼앗긴 어린 심성들에게 이와 같이 고전 음악이 가르쳐 주는 고귀한 정서는 너무나 절박한 교훈이 되는 것이다. 눈에 보 이지 않는, 물질적 값어치는 없으나 무한히 우리의 존재 밑바닥을 흔들 어대는 이 아름다움을 어린 심성들 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는 나는 그래 서 보람이 있다. 감사하다.
<
강미라 첼리스트/ 뉴브런스윅>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