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말 LA 한인타운 윌셔와 뉴햄프셔 코너에 있는 윌셔 갤러리아 샤핑센터를 취재차 방문했다. 이 건물은 10년 넘게 한인 투자그룹이 소유해오다 지난해 ‘헤리지 디벨롭먼트 그룹’이라는 유대인 투자회사에 4,900만달러에 팔렸다.
새 건물주가 건물 매입 후 건물과 부지를 호텔과 주거용 유닛, 리테일 스토어 등을 포함하는 대형 주상복합 단지로 재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힘에 따라 건물에 세들어 있던 한인업소들은 리스계약이 종료되는 대로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이미 많은 업소들은 K-타운 플라자, 시티센터 등 타운 내 다른 장소로 이전했고, 4~5개 업소만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영업하고 있었다. 한 업소에 들어가 업주에게 “곧 이사를 해야 할 텐데 갈 곳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몇 달 뒤에 나가야 하는데 아직 옮길 장소를 구하지 못했다”며 “4년간 이곳에서 장사하며 이웃 업주들과 형제자매처럼 지냈는데 모두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주는 건물을 유대인에게 팔아 대박을 친 한인 투자그룹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이 업주는 “내가 알기로 한인 건물주는 구입가보다 10배 이상 비싼 가격에 건물을 처분했다”며 “(건물주가) 렌트비는 꼬박꼬박 걷으면서 한여름에 에어컨이 고장나도 빨리 고쳐주지 않아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업주는 이어 “어느 날 갑자기 새 건물주로부터 오너가 바뀌었으니 리스가 끝나는 대로 이사를 가야한다는 내용의 통지서를 받았다”며 “건물을 매각한 한인 투자그룹이 테넌트들을 모아놓고 앞으로 업소들은 어떻게 해야되는지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기분 좋게 이사를 갈 텐데…”라며 서운함을 표시했다.
씁쓸한 마음으로 건물을 빠져나왔다. 부동산을 팔아서 큰돈을 번 것은 좋지만 이곳에서 생계를 꾸려온 업주들이 어떻게 될지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전 건물주의 태도가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렌트비를 내는 테넌트가 있었기에 건물을 유지할 수 있었고, ‘핫’한 지역에 부동산을 소유한 덕분에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긴 것이 아닌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동산은 ‘부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특히 덩치가 큰 상업용 부동산은 봉급쟁이들이 평생 돈을 모아도 살 수 없는 ‘그림의 떡’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너도나도 건물주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한다. 한 설문조사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장차 뭐가 되고 싶냐’고 물었더니 가장 많은 학생이 ‘연예인’, 두 번째로 많은 학생이 ‘건물주’라고 대답했다.
리우 올림픽 여자유도에서 은메달을 딴 경상도 처녀 정보경도 인터뷰 도중 “예전 꿈은 대통령이었지만 지금은 건물주”라고 말해 기자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서울 강남의 부동산 경매 학원들은 건물주의 꿈을 안고 몰려든 20대 대학생과 30대 직장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는 소식도 매스컴을 통해 전해졌다.
태평양 건너 LA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많은 봉급쟁이, 자영업자들이 사회·경제적 ‘갑’의 조건을 갖춘 건물주를 목표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산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내 한 건물주의 선행이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번화가의 건물을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이 건물주는 건물 3층에 있는 식당이 매출 부진을 겪는 것이 안타까워 경영에 도움을 주기위해 자비로 유명 비즈니스 컨설팅 업체를 고용했다. 테넌트를 배려하는 ‘착한 건물주’의 전형이다.
건물주가 꿈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욕할 수는 없다. 건물주는 돈만 밝히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세상에서 이왕이면 테넌트와 주변 이웃을 배려하는 착한 건물주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워보면 어떨까. 한인사회에서 착한 건물주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비즈니스 생태계가 건실해져 더불어 잘 사는 사회 건설에 일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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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훈 경제부·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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