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 철학의 대부인 김형석 교수가 90의 언덕에서 인생을 바라본 ‘백년을 살아보니’란 저서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저자는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 말한다. 돌이켜보면 힘든 과정이었지만,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었다고. 그리고 ‘그 것을 깨닫는데 90년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세상은 겪어봐야 안다고 한다. 100세 인생을 산 저자의 지혜를 간접으로 겪어보도록 하자.
50대 이후 삶을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는 인간관계라 한다. 가족, 친지, 친구를 포함한 모든 타인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진정 어린 관계가 삶의 내적 풍요로움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우정은 나이가 들수록 행복과 밀접하다. 사랑은 두말할 것도 없다. 노년의 불행은 경제적 빈곤이 아니다. 바로 사랑의 빈곤인 셈이다.
젊음은 아름답지만 노년은 찬란하단다. 젊은이는 불을 보지만, 나이든 사람은 그 불길 속에서 빛을 볼 수 있음을 말한다. 자기 자신과 가족, 인류까지 품을 수 있는 지혜로운 혜안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타인을 위해 아낌없이 베푼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한다. 후회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성공을 위해 앞으로만 달린 사람은 50대까지는 부러움을 받는다. 하지만 노년이 되면 허탈함과 허무함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성공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성공한 사람은 행복을 누린다고 여긴다. 저자가 그리는 ‘성공과 행복의 함수관계’는 다르다.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을 유감없이 달성한 삶은 행복하며, 성공적이다. 정성들여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실패가 없으나 게으른 사람에게는 성공이 없다는 의미다. 건강과 장수의 비결은 일에 있다고 믿고 있다.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건강도 유지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건강은 일을 위해 필수적이란 뜻이다.
아침에 뜨는 해는 청춘. 오후에 지는 해는 황혼. 저녁의 모습은 바로 중년이다.
인생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20대는 자신보다 부모의 기쁨을 위해 산다. 30대 이후는 직장과 가정을 위해 산다. 50대 중반에 이르면 그 때서 ‘아차’ 한다. 자신의 남은 인생에 대한 준비를 못해,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란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 세월 탓에 쉰 살이 지나 50대 중턱이다. 세상만사 이치가 이해되는 예순도 멀지 않았다. 어느덧 중년에 맞는 또 한해의 끝자락. 솔직히 아직도 하늘의 뜻이 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노년의 꿈도 없이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다. 중년에겐 인생 후반전의 시작이다. 살아온 날이나 살아갈 날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점점 더 빨리 다가오는 게 현실이다. 주변에 부모를 여윈 늙은 고아들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아내나 자식을 앞세운 지인들도 있다. 그러다보니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더 자주 간다. 갈 때마다 상주의 슬픔에 공감한다. 새삼 죽음 앞에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사실도 느끼다.
한인사회의 주요 역할은 거의 중년이 차지한다. 어렵고 힘들게 성취한 자리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것도 중년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고 시쳇말로 한방에 훅 가는 게 현실이다.
흔히 중년들은 노년의 초상을 자신의 자화상으로 삼으려 하지 않는다. 노년의 꿈 대신 ‘영원한 중년’을 원한다. 하지만 영원한 중년은 신화에 불과하다. 늙어가는 것을 은폐하는 것일 뿐이다. 아무리 회피하려해도 자연의 섭리 앞에 반드시 드러난다. 언제까지나 ‘영원한 중년’의 꿈에 머물 수 없다는 말이다.
노년보다 중년이 더 슬픈 이유는 꿈이 없기 때문이란다. 노년의 삶은 피할 수 없다. 포기할 수도 없다. ‘영원한 중년’의 꿈에서 벗어나 ‘행복한 노년’의 꿈을 키워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노년에 대한 꿈이 자랄 수 있는 것인가? 인생은 정답이 없다니, 각자의 몫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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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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