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 사무실에 한 허술한 차림의 부인이 찾아와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진즉에 찾아뵈어야 하는데…” 그리고 빵이 들은 봉지를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부족하지만 맛있게 드세요.”
누군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빵 봉지를 주면서 죄송하다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눈치 챈 듯 본인이 누구인가를 밝힌다. 생각났다. 박영준씨, 약 2년 전쯤 커뮤니티 브릿지 펀드의 혜택으로 탈장수술을 한 분의 부인이다. 이 펀드는 수술 날짜를 받아놓고도 그 어떤 혜택도 받을 수 없는 딱한 사정이 있는 분들의 상태를 점검하여 수술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한 펀드이다.
한인들이 밀집해 사는 지역의 병원이다 보니 꽤 많은 어려운 사정의 환자에게서 도움요청 전화를 받게 된다. 보험도 없고 가진 돈도 없는데 그 어떤 혜택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으나 빨리 수술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처지라면 어딘가에라도 문을 두드려 보고 싶을 것이다. 그 문이 커뮤니티 브릿지 펀드이다.
이 펀드는 그동안 인근지역의 교회와 개인 또는 작은 단체들에게서 성금을 받아 네 명의 환자가 수술을 하게끔 도와줄 수 있었다. 그 펀드로 수술을 했던 분들 중 한분이 박영준씨이다. 걷기조차 힘든 극심한 탈장으로 직장에조차 출근할 수 없는 상태에서 펀드의 도움으로 무난히 수술을 받고 일상생활로 돌아가셨던 분. 세월이 흘러 기억에서조차 사라지려는데 부인이 빵 봉지를 들고 찾아오셨다.
“수술후 박 선생님은 건강하시지요?” “네. 건강합니다. 그때 정말 막막했는데 도와주셔서 그 은혜를 갚지도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도움을 받고 정말 새 생명을 얻은 것 같았어요. 여기 우리같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분들을 위해 쓰시라고 가져왔으니 받아주세요.” 부인은 슬그머니 봉투 하나를 내 놓았다.
“이게 무업니까?” “적지만 열심히 모았어요. 받아주시고 꼭 필요한 사람을 위해 써주세요,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부인은 도망가듯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봉투 안에는 은행에서 바꿔온 듯 깨끗한 새 돈 2,000달러와 함께 짧은 편지가 들어있었다.
“우리보다 더 힘든 사람이 수술할 돈이 없어 애태울 때 적지만 도움이 된다면 더 감사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조금이나마 저의 감사의 표현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커뮤니티 펀드의 무한한 발전과 혜택 받는 분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 드리겠습니다. 박 영준 목사 드림.”
전화번호를 찾아 어렵게 통화가 된 부인과의 통화에서 알게 된 사연은 남편이 신학교를 나와 목사 안수를 받았지만 여건이 안 돼 농작물을 트럭에 싣는 일을 한다고 했다. 이 귀한 성금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쓰인다면 자신들의 기쁨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라고 했다. 묵직하게 느껴지는 봉투를 어쩌지 못하면서 새삼 부인이 입고 온 낡은 외투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태양은 떠오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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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영 병원근무/티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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