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 동요 우려 검열 통해 원천 봉쇄
▶ 시민운동가들에 외국인과 내통죄 경고
■ 맥 못추는 중국의 ‘미투’ 운동
나름대로 노력은 하지만 아무래도 미국이나 유럽과는 문화와 정치 환경이 다른 만큼 결과도 차이가 난다. 중국의 ‘미투’ 운동 얘기다. 중국의 “미투” 운동가들에겐 성추행 의혹에 관한 당국의 조사를 요구하며 청원서를 유포하는 정도만으로도 힘에 벅차다. ‘침묵 파괴자’, 즉 ‘사일런스 브레이커’(silence breaker)라 불리는 이들이 부숴야 할 장벽은 만리장성보다 견고한 남성주도 문화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큰 현실적 장애물은 유일 집권당인 중국공산당이다.
사회적 동요를 두려워하는 당과 정부는 검열을 통해 캠페인의 수족을 철저히 ;결박하려든다.
소셜 미디어에서 “성추행”은 금기어가 되어버렸고 온라인 청원서는 모두 삭제됐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정부 관리들은 제 목소리를 내는 일부 시민운동가들을 향해 미투 캠페인을 계속할 경우 외국인들과 내통하는 반역자로 간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남부도시 광조우의 시민운동가인 장 레이레이(24)는 “정부의 엄포로 진지하고 열의에 찬 많은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게 됐다”며 충격과 분노를 표시했다. 온라인 청원운동을 주도하는 레이레이를 비롯, 중국의 일부 여성들은 직장 상사, 스승과 동료들의 성추행 의혹을 조사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학생들이 제기한 학내 성추행 의혹을 보다 강력하게 조사해달라며 대학당국에 압박을 가하는 중이다. 이외에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성차별을 비난하고, 고위 관리들 가운데 여성이 태부족하다며 여론전도 전개한다.
약간의 성과도 있었다. 몇몇 대학 교수들이 전국적 논란을 불러온 성추행 스캔들로 인해 캠퍼스에서 퇴출됐다. 그 중에는 지난 15년간 6명의 여학생을 추행한 혐의를 받는 교수도 포함되어 있다.
어찌 보면 미투 캠페인은 중국정부의 인내력을 떠보는 중이다. 공산당 정부는 시민이 주도하는 운동이면 무조건 눈살을 찌푸린다. 여성의 권리 증진에는 한 없이 게으르지만 언론매체 통제에는 부지런하기 그지없다.
미국의 경우 탐사보도 매체의 폭로기사가 미투 캠페인을 촉발시킨 뇌관으로 작용한 반면 중국은 피해자나 여성 시민운동가들이 온라인을 통해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여론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성추행을 고발하기 위해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시작한 소피아 황 슈에킨(30)은 중국 남부지역의 언론이다.
그녀는 수년전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후 신문사를 그만두었다. 소피아는 “미투는 우리 모두의 경각심을 일깨워준 자명종이었다”며 “우리는 개인적으로는 미약하지만 힘을 합친다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아직도 중국 여성은 집에 머물며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을 키워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전통적 세계관에 갇혀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 10년간 여성의 역할이 크게 확대된 점에 착안, 중국 공산당은 성 불평등을 선무공작의 소재로 종종 사용한다. “여성이 하늘의 절반을 떠받친다”는 마오쩌둥의 유명한 발언이 좋은 예에 속한다.
그러나 근년 들어 정부는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성차별주의와 직장내 성희롱을 막기 위한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당의 상층부는 남성일색으로 채워져 있고, 정부고관들과 막강한 힘을 지닌 비즈니스 리더들은 종종 비리혐의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게다가 강간과 성희롱 관련법은 모호하기 짝이 없고, 법원은 고용주를 제소한 여성들에게 대부분 불리한 판결을 내린다.
고용주도 여성 피해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자체적인 조사를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설사 잘못이 입증됐다 하더라도 가해 남성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이 떨어지기 일쑤다.
베이징 위안종 젠더 개발센터의 디렉터이자 변호사인 리 잉은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불이익을 모면하기 위해 침묵을 택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미투 운동은 교육받은 도시지역 여성들로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 중국판 미투 운동의 주축은 베이징소재 항공기술학교인 베이항 대학의 졸업생 루오 시시다.
최근 그녀는 자신을 비롯해 7명의 여학생을 추행한 첸 샤우 교수의 죄과를 밝히는 에세이를 온라인에 올렸고, 이글은 3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10여 년 전 첸 교수는 그녀를 캠퍼스 밖으로 유인해 성관계를 가지려 했다. 물론 첸 교수는 루오의 주장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번 달 베이항 대학은 그가 여러 명의 학생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저질렀다며 해고 조치했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루오는 “정부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국의 미투 운동은 부드럽고 온건하게 추진되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중국의 시민운동가들은 성추행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교정되기까지 수십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대다수 일터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임금을 받고 있고, 주로 단순노동직에 배치된다. 남성들이 여성 동료들을 첩처럼 거느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그들의 외모를 대놓고 평가하기 일쑤다.
제지앙 대학에서 박사 코스를 밟고 있는 젱시는 “자발적으로 조직된 시민운동을 정부당국은 전혀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용기를 내어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한 여성들은 구오 동료, 친척들로부터 조롱과 비웃음을 당하곤 한다.
중국 남부지역의 여대생 장 치옹웬(22)은 학장인 조우 조우빈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성추행을 당한 뒤 지난 7개월을 악몽 속에서 지냈다. 조우 학장은 그녀 앞에서 자위행위를 했고, 강제로 키스까지 했다. 그리곤 “고발이나 신고를 하면 너는 물론 다른 학우들까지 졸업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협박으로 그녀의 입을 막으려 들었다.
그녀의 친구들조차 신고를 하게 되면 평판을 잃게 되는 등 심한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하겠다.
이로 인해 자살까지 생각하는 등 번민의 늪에 빠졌던 장 치옹웬은 지난 연말 온라인 에세이를 발표하고 조우 교수를 경찰에 신고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조우 학장과 그녀의 신고를 만류했던 또 다른 학장이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나란히 파면을 당했다.
장 치옹웬은 “그 끔찍한 기억을 지워낼 수가 없었다”며 “그러나 그 보다는 내 침묵이 더 많은 동종 범죄를 조장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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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New York Tie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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