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테러용의자 물고문'을 지휘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지나 해스펠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 내정자가 9일 의회에서 집중적인 추궁을 받았다.

민주당 의원들은 고문 프로그램의 비도덕성 및 실효성 여부를 거듭 캐물었지만, 해스펠은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오히려 CIA의 대(對)테러 성과가 고문 논란에 가려졌다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해스펠은 이날 상원 정보위원회 인준청문회에서 "우리가 9·11사태의 가해자를 체포했다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다"면서 "미국을 지키기 위해 중요한 공헌을 이뤄냈다는 사실들이 심문프로그램 논란으로 가려진다는 것은 비극"이라고 밝혔다.


해스펠은 '고문이 효과적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고문이 효과적이라고 믿지는 않는다"면서도 과거 심문프로그램에서 중요 첩보를 확보한 사례를 거론했다.

민주당 소속 카말라 해리스(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말이냐"고 되묻자, 해스펠은 "동의한다는 게 아니다. 심문 기법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한발 물러섰다.

해스펠은 다만 CIA의 과거 구금과 심문프로그램을 재개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그는 하루 앞서 공개한 모두발언 자료에서도 "내가 통솔하는 한 CIA가 그와 같은 구금과 심문프로그램을 재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개인적 약속을 여러분에게 드릴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트럼프 대통령이 이행하라고 명령한다면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는 물음에 "기술적으로 합법적이라고 하더라도 CIA의 비도덕적인 행동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내 윤리 기준은 매우 확고하다"고 답변했다.

또 '대통령이 물고문을 지시하고, 해당 용의자가 아주 가치가 높은 테러용의자일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압박 질문에는 "대통령이 내게 그런 부탁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고문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 외에도 여러 질문을 던지며 종일 해스펠을 추궁했지만, 듣고자 했던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고 미 언론들은 평가했다.

그가 상원의 인준 문턱을 넘어서는 것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의 존 맨친(웨스트버지니아) 상원의원이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인준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상원 인준을 통과하려면 찬성표가 절반을 넘어야 한다. 공화당이 전체 100석 가운데 51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존 매케인(공화·애리조나) 상원의원과 랜드 폴(공화·켄터키) 상원의원 등이 인준에 반대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고문을 당했던 매케인 의원은 동료 의원들에게 반대표를 행사해줄 것을 종용하고 있다.

그러나 "맨친 의원이 찬성으로 돌아서면서 해스펠은 상원 정보위와 전체회의 표결을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고 NYT는 전망했다.

CIA에 33년간 근무한 해스펠은 해외비밀공작 전문가로 지난해 2월 CIA 사상 첫 여성 부국장으로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때부터 그가 2002년 태국에서 '고양이 눈'이라는 암호명의 비밀감옥을 운영했으며 당시 물고문 등 가혹한 심문을 지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스펠이 인준을 통과한다면 CIA 역사상 첫 여성 수장이 된다.

한편, 이날 청문회장에는 '심문프로그램 논란'과 맞물려 해스펠을 비판하는 일부 시위대들이 들어와 한때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