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기없는 낙엽과 구부러진 길들이
바람더미에 휩싸여 먼지로 덮히는 어스름 저녁
아침이 오겠습니까, 어머니
아침이 오면 어머니 살갗 내음 은은한 시래기국 맛을 볼 수 있습니까
하늘이 낮아진 겁니까, 아니면
제가 눈부실 정도로 어른이 된 것입니까, 어머니
계절 탓이리라 어머니 건강을 어루만지면
젖은 손등 닦아내시는 당신 거친 손을 잡으며
여지없이 시간을 꼬아서 인고의 세월을 엮는 철저한 슬픔을 알고
밤이 되면
달 보다 더 오래 불을 켜고 빈 가슴 너머엔
시린 우풍이 자기모순에 몸부림칩니다, 어머니
아직도 제게는 어른이 멀기만 하고 하늘은 높기만 합니다
어머니
가을인가 봐요
잎들은 마르고 저는 살찌지만 세상은 넓기만 합니다
그만 둘까요, 어머니
어른이 되는 일 말입니다
핏줄 같은 세상을 들여다보기엔 제가 너무 부족 합니다
이 비굴은 또 무엇이며
얼만큼의 세월을 더 준비해야 하나요 어머니
가을은 저를 필요로 하지 않아요
어머니 무릎에 누어 저는 잠이 들래요
(본보 문예공모전 시 부문
당선작 ‘어머니’ 전문)
메릴랜드 캐롤 카운티 웨스트민스터에 거주중인 심재훈(63)씨가 본보 미주본사가 주최한 제 40회 문예공모전에서 시부문에 당선됐다. 당선작은 ‘어머니’. 2003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인생의 쓸쓸함에 덧대 늦은 가을날 저녁 풍경처럼 곱게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심 씨는 당선소감에서 “그 새벽에, 많은 것을 기억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졸렬한 가슴과 창백한 생각들은 걸인처럼 남루한 옷을 입고 안개구름 따라 허둥대며 방황하고 있었다. 간밤 태우다 남은 숯검댕이를 모았다. 비슷한 모양의 내 마음도 모았다”라며 “순수를 간직한 어른이 될 길을 터준 한국일보에 감사함을 전한다”고 말했다.
심사를 맡은 한혜영 시인과 나태주 시인은 각각 “스산한 인생의 계절에서 느끼는 좌절감과 고독감을 잘 드러냈다. 나직한 음성으로 간간히 부르는 어머니가 묘한 울림으로 파고들었다”, “당선작인 ‘어머니’는 말법이 순하고 체질화 되었다”고 평했다.
올해 공모전에는 시 171편, 단편소설 48편, 수필 123편 등 총 342편이 응모됐다. 심사는 시인 나태주씨와 한혜영씨가 시 부문을, 소설가 은희경(본심)씨와 윤성희(예심)씨가 소설 부문을, 수필가 박덕규씨가 수필 부문을 심사했다. 당선작 수상자에게는 1천달러(시·수필)~2천달러(소설)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된다.
강원도 강릉이 고향인 심재훈 씨는 서울 중대부고와 대학 졸업 후 2004년 부인 미선씨 및 외동딸 선 씨와 함께 이민했다. 이민 후 학창시절부터 관심 있었던 문학습작을 본격 시작, 이번에 실력을 인정받게 됐다. 내년 봄 그동안의 작품들을 모아 첫 시집을 낼 예정이며, 미국에 오기 전 수필집 ‘모릅니다’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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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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