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옥희 (VA, 복지센터 자서전쓰기반 지도강사)
때로는 가슴 벅찬 감동이, 때론 말 못할 슬픔과 절망, 고단함이 우리의 삶에는 있다. 특히 낯설고 물 선 이국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 한인들에게는 결이 다른 스토리들이 저마다의 가슴 속에 내장돼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속, 이제는 잔잔한 강물처럼 침잠됐을 워싱턴 지역 한인들의 초기 이민생활의 애환과 남다른 사연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고 강의를 듣고 있었다. 강사님께서 “내가 어려울 때 돈을 빌려 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사람 손들어보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서슴없이 손을 번쩍 들었다. 내게는 척박한 이민 삶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절 도움을 준 친구가 있다.
벌써 3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 아들이 10살, 딸이 9살이었다. 이민의 삶은 너나 할 것 없이 힘겨운 삶이다. 나도 예외 없이 아이들을 기르며, 직장을 다니며, 또 하나님 믿는다고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너무나도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었다.
워낙, 약골이었던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가고 잠을 잘 때마다 식은땀이 흐르고 기운이 없었다. 유방암 검사를 받았는데, 초기 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조직 검사를 하더니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틀 후 수술 날짜를 잡고 오른쪽 가슴 절제 수술을 했다.
마음이 몹시도 추웠다. 어미 마음이 되어 나도 그렇게 기도를 했다. “하나님, 내가 죽는 것은 괜찮은데 저 아이들은 아직 어립니다. 어떻게 하지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밀랍 같은 몸으로 수술대 위에 누웠다. 수술실 천정이 꽤나 높아 보였다.
유방암 수술 후, 주위 사람들이 나더러 공기 좋고 조용한 곳에 가서 쉬면서 건강 회복을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그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안 가겠노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돈을 봉투에 넣어 나에게 내밀었다. 2천불 가량 되는 금액이다. 30년 전 그 돈은 큰돈이었다. 여유가 있는 친구도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돈을 주셨어.” 그동안 누구에게 받을 돈이 있었는데 때 마침 그 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쓸 일도 많았을 텐데…. 3주 동안 요양처에서 추웠던 마음도 녹이고 하나님의 사랑도 조금은 맛보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
“친구야, 강의 시간에 강사가 어려울 때 돈을 빌려 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을 때, 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전화 속으로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다. “남편이 고마웠어, 내가 그 돈을 자기에게 주자고 하니까 선뜻 주자고 했거든….” 어제도 이 자랑스러운 친구와 통화하면서 그 옛날 이민 삶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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