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2년 텍사스에서 도넛 가게를 운영하던 나의 모습.
문득 꺼내든 빛바랜 사진에는 잊을 수 없는 추억과 얼굴들이 있다. 오래 전, 독자들이 각종 행사나 모임 등에서 찍은 옛 사진을 앨범 속에서 꺼내 공유하는 코너를 마련했다. 독자들이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추억의 사진을 직접 골라 간단한 사연과 함께 본보에 보내주면 모든 한인들과 함께 추억을 나누고자 한다.
우리 부부는 1980년, 어린 두 자녀와 함께 대학 동기가 있는 시애틀에 도착했다.
낯선 이민 생활이 시작됐지만, 우리 가족은 운 좋게 정부 아파트에 바로 입주했다.
우리가 살던 정부 아파트에는 낮에 벤치에 앉아 수다 떠는 백인들이 많아서 참 풍요로운 나라이어서 저렇게 편안하게 지내며 먹고 살고 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아파트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은 정부 보조금을 받아서 생계를 꾸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부부는 미국에 온 지 이틀 만에 하루 일당이 25달러인 직장에 취직을 했다.
매일 새벽에 출근해 8시간 힘든 일을 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당시 남편은 자영업을 알아보던 중 친구로부터 텍사스의 한 도넛 가게를 추천받았다. 짧은 영어로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우리 부부는 귀가 솔깃해졌다.
1982년, 우리는 도넛 가게를 인수하면서 시애틀에서 텍사스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우리 부부는 매일 새벽 2시에 출근해 하루 영업 준비를 한 후 새벽 5시에 가게 문을 열었다. 새벽부터 오는 손님들에게 아침식사로 도넛을 팔고 나면 낮 12시에 가게 문을 닫았다.
당시 가게의 매상은 보통 500-600달러. 재료비와 임대료, 기타 비용을 제외하고 하루 몇 백 달러의 돈을 벌었다. 하루에 25달러를 받던 때보다 좋았다. 당시에는 피곤한 줄 모르고 가게를 운영했었다. 도넛 가게를 운영하면서 영어가 서툴러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던 기억도 아직 새록새록하다.
사진을 보니 그 시절에 고생스럽긴 했지만 나름 즐겁고 좋은 일도 많았던 기억이 난다. 도넛 가게를 운영하면서 자녀들도 다 키웠고, 그 시절 고생한 덕분에 지금은 은퇴하고 글도 쓰면서 소녀 시절의 꿈 많던 문학소녀가 되어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고 있다.
“무식이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이 그 시절 고생은 추억으로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 낯선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를 회상하면 사연도 많고 애로사항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애쓴 만큼 꿈을 이룬 것 같다. 원대한 꿈은 아니더라도 소박한 꿈속에서 행복한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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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 포토맥문학회 회원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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