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요즈음처럼 놀이문화가 발달하기 전에 그 시대의 지혜와 해학, 풍자, 한(恨)을 예술로 승화시킨 종합예술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방탄소년단(BTS)등 한류의 뿌리도 판소리라고 생각한다. 불과 250년 전의 일이다. 판소리의 음악적 특성 중에 계면조(界面調)는 ‘얼굴이 일그러진다.’는 뜻으로 가장 슬픈 대목들에서 주로 나타난다. 특히 ‘심청가’에는 이런 슬픈 대목이 많은데, 그런 슬픔 가운데에서도 더욱 더 오장을 긁어 놓은 장면이 나오는데 ‘뺑덕어멈’ 장면이 그것이다. 그 대목을 살짝 들여다보자.
(아니리)
심봉사가 딸 심청을 남경장사 선인들께 떠나보내고 낮이면 강두에 가서 울고 밤이면 집에 돌아와 울고 눈물로 세월을 보낼 제 그 마을 사는 묘한 여자가 하나 있으되 호가 뺑파것다. 심봉사 딸 덕분에 전곡간이 있단 말을 듣고 놀고먹을 요량으로 동리 사람들 모르게 자원출가 했던가보더라. 이 급살 맞을 뺑파가 어떻게 먹성질이 좋던지 불쌍한 심봉사 가산을 꼭 먹성으로 조지는데
(자진모리)
쌀퍼주고 떡사먹고 밥 잘 먹고 고기 잘 먹고 고기 사먹고 벼 퍼주고 술 사 먹고 이웃집 밥부치기 동인 잡곡 욕 허고 초군들과 싸움허기 잠자며 이갈기와 배 끊고 발 털고 한 밤중 울음 울고 오고 가는 행인 다려 담배 달라 실낭허기 술 잔뜩 먹고 정자 밑에 낮잠 자기 힐끗허면 핼끗허고 헬끗허면 힐끗허고 삐쭉허면 빼죽허고 빼쭉허면 삐죽허고 남의 혼인허려허고 단단히 믿었난디 해담을 잘허기와 신부 신랑 잠자는디 가만가만 문앞에 들어서며 불이야 이 놈의 행실이 이러허여도 심봉사는 아무런줄 모르고 뺑파한테 빠져서 나무칼로 귀틀 외어가도 모르게 되었것다.
이런 심청가의 ‘뺑파’를 뛰어넘는 해코지로 ‘남자뺑파‘가 ’흥보가’에 등장하는디, 바로 ’놀부‘렸다. 놀부의 ‘심술타령’으로 얼른 넘어가 보자.
‘외상 술값 억지 쓰고, 다 큰애기 무함잡고, 초란이 보면 딴낯 짓고,
의원보면 침 도적질, 거사 보면 소고 도적, 지관 보면 쇠 감추기,
산거름 길에다 허방파기, 미나리꽝에 소 몰고, 고추밭에 도리께 치기,
옹기전에 말달리고, 혼사받은 처녀 겁탈하기, 비단전에 물총 놓고
호박에 말뚝 박고,늙은 호박에 똥칠하고, 똥누는 놈 주저앉히고,
우는 어린애 똥 멕이고, 새암질에 허공 파고, 애 밴 부인 배통 차고,... ...‘ 그 놈의 심술타령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난리다. 좀 엉뚱한 일이기는 하지만 요즈음 세계언론의 관심은 온통 ‘한국’이다. ‘경제를 포기하지 않고 코로나19를 막은 유일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03/23/2020 뉴욕타임스). 뉴욕타임스는 이날 ‘한국은 어떻게 바이러스 확진을 막았나’라는 특집보도 첫 문장에서 ‘수치만 봐도 전 세계적으로 유독 한 나라가 눈에 띈다. 바로 한국이다.’라는 한마디로 비교불허의 한국의 코로나 대처상황을 함축해 버렸다. 같은 날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에서 ‘의료장비 지원‘을 요청했다. 미 대통령이 한국에 도와달라고 한 것이다. 아마도 양국 간에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1996년, 한국이 OECD에 가입하자 ‘국운’을 떠올렸다. 2018년, 5030클럽(인구5천만, 3만불)에 진입한다. 이는 세계 7대강국을 의미한다. IMF는 2020년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정작 코로나19가 터지고 보니, 국가시스템, 공무원, 의료체계, 시민의식, 정보의 투명성에서 기존 선진국의 시각에서는 한국은 벌써 ‘이상한 나라’(?)가 되어 있었다. 지구상에 사재기‘가 없는 유일한 나라, 코로나를 잡으러 다니는 나라, 그 다음 이야기는 생략한다.
뺑덕어미는 주로 손 안에 있는 걸 지맘대로 했다면, 놀부는 숫제 ‘남 잘되는 꼴을 못보니’ 그런 심통 면에서는 뺑덕네와는 단수가 한참 다르다. 놀부에게는 동태형제 흥부마저도 당연히 ’남‘이어야 했고, 심지어 내외지간도 각자였다. 자신 외에는 없다. 넓은 세상이 너그럽게 눈감아 줘서 그렇지 한국의 코로나19 극복의 세세면들을 들여다보자면 일부의 끝도 없는 ’놀부타령‘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는 내 낯이 화끈거린다. 말뚝은 호박에다 박기도 힘들다. 옆에도 한번 박아도 보고, 그래서 울타리도 좀 되어주면 보기에도 참 좋겠던데, 그걸 깨달을 위인들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턱이 없을 것이니 자식들이 배울까 봐 놀부에게는 자식을 주지 않았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놀랍다. 나라가 선진국이면 국민도 선진국민이 된다. 선진국민 되는 게 배 아프면 이게 바로 ‘놀부 코로나’이고, 코로나 19보다도 더 무서운 한국병일지도 모른다. 코로나와 같이 사라졌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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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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