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가슴 벅찬 감동이, 때론 말 못할 슬픔과 절망, 고단함이 우리의 삶에는 있다. 특히 낯설고 물 선 이국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 한인들에게는 결이 다른 스토리들이 저마다의 가슴 속에 내장돼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속, 이제는 잔잔한 강물처럼 침잠됐을 워싱턴 지역 한인들의 초기 이민생활의 애환과 남다른 사연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지금부터 40여년 전, 하이크 신부님의 추천으로 텍사스 주 휴스턴의 성 토마스 대학에 입학허가를 받아 홀로 휴스턴에 왔다.
임시로 친구의 친구 집에 있으면서 있을 곳을 찾으니 생각보다 어려웠다. 휴스턴은 넓어서 차가 있어야 되는데 당시 한국에서 갓 온 나는 운전도 할 줄 몰랐다.
긴 어두운 좁은 땅굴을 힘들게 기어가는데 앞에 빛이 비쳐 그 빛이 들어오는 곳을 쳐다보니 하늘이 보였다. 그 구멍으로 빠져나오는 꿈에서 깨어난 그날, 그 무렵에 알게 된 낸시라는 목사 부인에게 전화하여 그 분의 차로 집을 보러 나섰다.
낸시의 친구가 라이스 대학 학생 과에서 일을 하여, 그 곳에서 찾아본 집은 텍사코 사장의 미망인인 올리어리 할머니의 집이었다. 할머니는 심장병이 있어 의사선생님이 밤에 집에 누가 함께 있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할머니는 방값은 무료이며, 밤에 집에 있어줄 학생을 구한다고 했다.
할머니의 집은 휴스턴의 리버옥스 라는 최고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서도 가장 좋은 영국의 성 같이 생긴 집이며, 성 토마스 대학도 가까워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갈 수 있었다.
하얀 레이스 침대 카버의 침대, 오렌지색 카펫트로 장식된 할머니의 손녀딸이 사용하던 방에, 대리석 책상 앞에 앉아서 창문으로 보이는 경치를 보며, 필수 과목인 그리스 철학,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니, 마치 신데렐라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몇 달 후에 한 미국 친구가 자기는 차가 있으니 함께 아파트를 나누어 사용하자고 제안을 하여 그렇게 하려고 하자, 그 동안 정이 든 할머니는 하이크 신부님께 전화했다.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방세뿐만 아니라 식사도 함께 무료로 해 주고, 미국 풍습도 가르쳐 주면서 조언해 주셨다. 그 때부터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만 1년, 나는 미국에서 제일 좋은 집에서 무료로 숙식을 하며 미국생활에 적응을 했다.
‘하느님의 연결고리’로 그린 47년의 미국의 삶,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따뜻한 희망의 빛을 표현 하고자, 오늘도 나는 화판 앞에 서서 물감을 칠하고 또 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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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수 (DC,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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