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캐퍼닉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NFL 샌프란시스코 49ers에서 쿼터백으로 뛴 흑인선수다. 네바다 대학 출신으로 2라운드 드래프트 지명을 받아 샌프란시스코 유니폼을 입은 그는 곧바로 주전 자리를 꿰찬 후 빠른 발과 강한 어깨로 팀을 수퍼보울까지 이끈 스타 선수였다.
하지만 2016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그는 프로무대에서 사라졌다. 자발적으로 선수생활을 접었거나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캐퍼닉은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무릎 꿇기’ 시위의 원조다. 그는 경찰의 총격으로 흑인이 잇따라 사망하는 등 인종차별 이슈가 들끓던 2016년 8월, 경기 전 미국국가가 울려 퍼질 때 무릎을 꿇은 채 국민의례를 거부했다.
캐퍼닉의 항의에 200명이 넘는 NFL 선수들이 국가연주 때 무릎을 꿇거나 주먹 쥔 손을 들어 올리는 식으로 동조했다. 당연히 미국사회에 큰 파문이 일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선수들의 항의 제스처를 “비애국적”이라 비난하고 NFL 구단주들에게 선수들의 해고를 촉구했다.
NFL 구단주들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다. 내심 트럼프와 비슷한 생각들을 했겠지만 대통령의 요구를 따르기엔 선수노조의 반발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팀도 2016년 시즌 후 자유계약 선수로 풀린 캐퍼닉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선수들에게 경고를 날린 것이다. 캐퍼닉은 지난 해 NFL 복귀를 바라며 몇몇 팀들을 초청해 공개훈련을 가졌지만 계약을 하자고 나선 팀은 없었다.
그런데 풋볼 필드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캐퍼닉을 철저히 왕따 시켜온 NFL의 태도가 최근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태 후 180도 바뀌었다. “인종차별과 흑인들에 대한 조직적인 억압을 규탄한다”면서 “선수들에게 좀 더 일찍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잘못이었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 며칠 전 로저 구델 NFL 커미셔너는 “NFL 팀들이 캐퍼닉과 계약을 맺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커뮤니티를 위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캐퍼닉이 우리를 돕고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지난 4년 동안의 철저한 외면을 떠올리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달라진 태도다.
조지 플로이드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시위들을 통해 캐퍼닉의 ‘무릎 꿇기’가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데 따른 시류 영합적 대응으로 보인다. 코로나 사태 속에 조심스럽게 경기를 재개하고 있는 전 세계 축구선수들은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의미로 경기 전 함께 무릎을 꿇는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이런 추세 속에 미국축구연맹도 경기 전 서서 국가제창을 하지 않는 선수들에 대해 징계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 축구선수들 사이에 ‘무릎 꿇기’가 확산되자 선제적으로 징계규정을 바꾼 것이다. 그러자 트럼프는 앞으로 풋볼과 축구 경기를 보지 않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캐퍼닉은 자신의 신념을 천문학적 액수의 연봉과 맞바꿨다. 흑인에 대한 차별에 항의해 무릎을 꿇었을 때 많은 이들이 비판하고 조롱했지만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아무리 스포츠 스타라 해도 이런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다. 그가 보인 신념과 용기는 이제 세상을 바꾸는 분노의 에너지로 표출되고 있다.
금년 32세인 캐퍼닉이 과연 새 팀을 찾을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무적 생활 중에도 꾸준히 운동하고 몸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실력은 크게 녹슬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아무쪼록 야생마처럼 필드를 휘저으며 멀리 공을 던지는 그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될 날이 돌아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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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나 같아도 평생 먹고 살수있는 수천만불의 계약금을 포기하고 자신의 의지를 보인다는것은 아마 돈 때문이라도 못했을것이다. 나도 이 선수를 높이 평가한다. 후세에는 영웅으로 기록될것이다.
옳고 그름이 확실한 그 녹슬 지아니하고 맑고 빛나는 그 순수한 마음을 용기를 높이 삽니다, 앞날은 하늘에서 도울테니까 걱정은 안해도 될듯합니다. 화이티~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