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방숙자 글로벌 어린이재단 명예 이사장
▶ 간호학·교육학 박사로 이민사회 가정돕기앞장
나라사랑어머니회 설립, 한국의 결식아동 돕기…대통령상, 엘리스아일랜드 공로상, 동백장 수상

글로벌어린이재단의 전신인 나라사랑어머니회는 1998년 11월4일 한국의 결식아동을 돕기위해 비영리단체‘사랑의 친구’를 통해 한국에 2만달러를 전달했다. 아래 맨 왼쪽이 당시 유분자 서부회장, 세번째가 방숙자 총회장.

방숙자 명예 이사장이 2010년 유엔본부에서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에게 전 세계 어린인 기아돕기성금을 전달후 악수를 교환하고 있다.
“노환으로 본인의 몸이 불편하신 상황에서도 돌아가시기 몇 달 전부터 이젠 독거노인들을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돕는 프로그램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하버드법대 석지영종신교수의 모친인 글로벌어린이재단(GCF) 뉴욕지부의 최성남 전 회장은 “방숙자 이사장이 한평생을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남녀노소와 인종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의 불우한 이웃돕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글로벌어린이재단 창립자인 방숙자 명예이사장이 지난 2월1일 뉴저지주 리지우드에서 89세 나이에 별세했다. 1931년 8월4일생인 방이사장은 1952년 6.25전쟁중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법정대)에 입학했다. 6.25당시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공산군에게 넘어갈 뻔했던 기밀서류를 보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3년 대한민국 정부포상을 받았다.
방이사장은 졸업후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에서 사감과 간호학과 교수를 겸임하게 되었다. 이후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의 간호학과에 입학해 1963년 간호학 석사 과정을 마친 후 가톨릭대학의 간호학과 교수로 제자 양성에 힘썼다.
1968년 텍사스 달라스 파크 메모리얼 병원으로 취업 오퍼를 받아 도미길에 올랐다. 1972년에 워싱턴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여성상담소를 설립, 소장과 고문으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사회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당시 40대 여성으로 자신이 그동안 쌓은 간호사의 경력과 법률 및 행정력을 바탕으로 이민사회의 가정, 자녀, 경제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1976년 워싱턴 DC 가톨릭대학에서 간호학 및 교육학 박사과정을 끝냈다. 특히 1998년은 한국에서 IMF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기였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영부인 이희호 여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이희호 여사의 초대를 받게 된다. 한국은 많은 가장이 직장을 잃게 되면서 학교마다 결식아동이 불어나고 국가재정으로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형편인지라 영부인이 울먹이며 미주지역의 한인어머니들에게 어린이 돕기 운동을 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때 탄생된 재단이 오늘날 글로벌어린이 재단의 전신인 ‘나라사랑어머니회’다. 당시 창단 회원 3명이 주축이 되어 방숙자 명예이사장이 총회장, 유분자 소망소사이어티 이사장이 서부회장 그리고 손목자 명예이사장이 사무총장을 맡아서 전국기구로 키우게 되었다. 그때 모금한 2만 달러는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으로는 무척 큰 금액이었다.
그 후 빠른 시일 내에 대한민국은 IMF를 극복하게 된다. 한국이 IMF를 극복하면서 나라사랑어머니회는 더 크고 원대한 앞날을 위해 발전적 해체를 결정하고 현재의 글로벌어린이재단(Global Children Foundation·GCF)으로 개편되어 수혜 대상을 한국의 어린이에서 전 세계의 어린이로 넓히게 되었다. 1998년에 창립되어 올해로 23년째인 글로벌어린이재단(globalchildren.org)은 현재 전 세계 23곳에 지부를 두고 6,000여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으며 모금액만도 450만 달러가 넘었고 전 세계 어린이 52만명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방숙자 이사장은 평생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김대중 대통령 공로상, 2002년 찰스 랭글 커뮤니티 봉사상, 2007년 이화여자대학교 ‘아름다운 이화인’상, 2017년 엘리스 아일랜드 공로상, 2018년 국민훈장 동백장 등 굵직굵직한 상을 수상했다.
■ 조사 - 소망소사이어티 유분자 이사장한국에서 방 이사장님은 가톨릭 대학에서 간호학을 가르치셨고, 저는 대한적십자사 간호사업국장의 직책을 맡아 실무를 챙겼습니다. 그렇게 저희 둘은 만났습니다. 간호협회 모임에서 만난 건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68년 우리는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했지요. 태평양을 건너 미국 땅을 밟았습니다. 텍사스 달라스 파크랜드 메모리얼 병원에서 취업 오퍼를 받아 함께 흰 가운을 입었습니다. 1년 남짓 근무하며 우리는 ‘룸메이트’로 지냈습니다. 반세기도 훨씬 지난 옛 이야기지만 우리는 이렇게 ‘운명’으로 엮였습니다. 1년 후 텍사스를 떠난 방 이사장님은 뉴욕에서, 저는 LA 근교의 벨플라워 카이저 병원에서 각각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젊었을 적 방 이사장님은 열정적이었습니다. 1970년 함께 텍사스 ‘달라스 간호협회’를 만들면서 내게 초대회장을 맡아달라고 주문했지요. 몇 번이나 고사했는데도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한 번 결심을 하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성격이지요. 달라스 간호협회는 이제 글로벌 네트워크로 확대돼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간호사들의 친목 도모는 물론 학술토론의 장으로 탈바꿈 했습니다. 방 이사장님의 헌신과 노력이 없었다면 이뤄내기 쉽지 않았겠지요.
방 이사장님, 이제 평안히 눈을 감으셔도 됩니다. 굶주리는 아이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헌신해 오신 이사장님의 열정은 이제 후배들이 이어받아 더욱 빛을 발할 겁니다. 하늘 높은 곳에서 후배들을 지켜봐 주시며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삶과 추억…돌아가신 분의 업적을 기리고 유가족과 함께 고인의 추억을 나누고자 합니다. 평생을 열심히 일하시고 돌아가신 분들의 소식을 알려주시면 게재해드리겠습니다. 부고광고를 내신 분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연락처: peterpak@koreatimes.com, (323)692-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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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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