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깊은 와인 스토어가 스카스데일을 떠난다. 30여년전 이곳으로 이사왔을 때 이 동네가 굉장히 고급스럽다고 느끼게 해준 상점이 스카스데일 기차역 바로 앞에 있는 ‘재키스 와인 스토어(Zachy’s Wine Store)’ 였다.
물론 고급 양품점과 보석상, 독특한 어린이 옷과 비싼 장난감을 파는 가게 들이 즐비했지만, 고풍스런 유럽식 건물에 자리잡고 있는 ‘재키스 와인 스토어’는 머리 속에 들어있던 기존의 리커 스토어라는 이미지를 깨 주었다.
브롱스 지역에서 리커 스토어를 하고 있는 지인을 찾아갔을 때 주인이 방탄 유리 뒤에 앉아 있어서 놀랐었던 것 만큼, ‘재키스 와인 스토어’에 들어갔을 때에는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나이든 남자 점원이 뭘 도와드릴까요 하는 바람에 놀랐었다.
때때로 와인 테이스팅에 가보면, 상점 한 구석에서 라이브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치즈와 올리브, 프로슈토 같은 안주가 풍성히 차려져 있어 그야말로 맨하탄의 바를 연상시키곤 했다.
한창 전성기에는 재키스 앞에 리무진이 서있고, 마이클 조단이 들어 와서 만 달러 어치 와인을 사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맨하탄에서 일을 하고 기차를 타고 집에 오는 주민들은 재키스에 들려 와인을 고르며 하루의 피곤을 푸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고 했다.
나의 경우 ‘재키스’에 가서 와인을 산 적은 실로 손꼽을 만하다. 내 수준에는 맞지 않는 비싼 와인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메가 스토어 붐으로 센트럴 애비뉴에 생긴 ‘와인 웨어하우스’라는 이름의 대형 리쿼 스토어라든가, 코스코 옆의 디스카운트 리커 스토어 그리고 동네 곳곳에 구멍가게처럼 들어선 작은 와인 스토어에서 와인을 얼마든지 손쉽게 살수도 있으니 언제부터인가 ‘재키스’라는 이름은 자연스럽게 뒷전에 물러나 있었다.
그러다 ‘재키스’가 내년, 2022년 1월에 포체스터(Port Chester)로 이사간다는 소식에 나도 모르게 ‘어머나’ 했다. 마치 친구가 다른 곳으로 떠나가는듯한 기분조차 들었다. 내가 이 정도라면 오랜 세월 재키스의 단골 손님들은 더 섭섭해 할 것이다.
1944년에 자그마하게 시작한 ‘재키스’가 현재는 4,000스퀘어 피트의 장소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스카스데일 빌리지에 수십 년을 주민들과 마치 한 가족처럼 이어 온 작은 상점들이 속속 문을 닫는 지경에 스카스데일의 상징이기도 한 ‘재키스’마저 이 자리를 떠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비즈니스가 어려워 문을 닫는 것이 아니고 최첨단을 달리기 위한 발 돋음이라고 하니, 위안이 될뿐 아니라 오히려 본 받아야할 모법이 아닐 수 없다.
내년에 이사 가기로 한 포체스터에는 예전 ‘스트라우스 페이퍼 컴페니’자리에 총 7만 스퀘어 피트에 리테일 스토어와 창고 그리고 인터넷 비즈니스 사무실과 와인 경매장까지 갖추게 된다.
인터넷 주문 등의 배달 용량이 기존의 400퍼센트를 소화 시킬 수 있으며 온라인 경매 비즈니스까지 다 합하면 재키스는 미 동북부에서는 가장 큰 와인 비즈니스로 상승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옛날 방식만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감지를 하고 대범하게 도약한 ‘재키스’에 감탄을 한다.
나이 들었다는 것, 오래 되었다는 것만이 자랑은 아니다. 할 수 있을 때, 익숙해진 라이프 스타일에서 나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대를 현재 진행형으로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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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려 /웨체스터 전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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