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상담을 하다 보면, 배우자 모르게 은행에 돈을 꽁꽁 숨겨놓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비밀이 없다 하듯, 이혼소송에서 은행계좌도 예외는 아닙니다.
김씨 부부 사례입니다. 김씨네는 결혼 기간 내내 밥상에서 접시가 날라가고 깨지고 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강산이 몇 번 변하도록 이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시한 폭탄을 안고 사는 부부 관계입니다. 그러다, 자식들이 다 짝을 맺고 나니, 이제는 각자 갈 길을 가자고, 한 치 망설임 없이 이혼 변호사를 찾아갑니다.
자, 아줌마 변호사가 아줌마에게 재산 목록에 대해 이것저것 따져 묻습니다. 그러자, 아줌마 왈,‘아이~~ 변호사님, 그렇게 까다롭게 하실 것 없어요. 미국에서 눈에 보이는 것만 반 반 나누어 주시면 돼요.’ 이 말에, 변호사, 몇 십년간 훈련된 촉각이 곤두섭니다.
`미국 재산 말고, 한국에도 재산이 있으시다는 말씀이네요.’ 그러자, 아줌마,‘아~, 예리하시네, 그간 틈틈이 은행계좌에서 한국으로 송금해서 모아 놓은 돈이 꽤 있지요. 근데 남편은 몰라요. 그 부분은 얘기 꺼낼 필요 없고요.’ 글쎄요, 정말 아줌마 생각대로 얘기 꺼낼 필요 없을까요?
자, 여기서, 캘리포니아 주 가정법을 살펴보면은요, 이혼 시, 합의를 하든, 재판을 하든, 반드시 이행하셔야 하는 절차가, 바로‘DISCLOSURE’라는 단계인데, 이는 법이 요구하는 절차라 개인 임의대로 하고 말고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이 단계에서, 부부는 자신의 재산, 부채, 수입, 지출에 관한 서류를 작성, 쌍방 간에 교환해야 합니다.
DISCLOSURE의 의무를 설명 드리면, 많은 의뢰인들이,‘아이고, 변호사님, 쉽게 쉽게 갑시다, 뭐 미주알 고주알 다 낱낱이 공개를 합니까? 어차피 상대방은 모르는 부분인데’라고 하십니다.
이에, 법은, 부부 공동재산은 원래 50/50으로 분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DISCLOSURE 단계에서 의도적, 계획적으로 공동재산을 공개하지 않았을 경우, 법적 괘씸죄가 가중되어, 공개하지 않은 재산의 100%을 상대방에게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이 설명을 다 들은 김씨 아줌마, 아직도 포기가 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끝까지 미련의 끈을 놓치 않습니다. 이에, 변호사, 아줌마가 가져온 미국 은행 계좌 서류들을 아줌마 앞에 펼쳐 놓고 한국으로 송금한 내역들을 하나하나 짚어 드립니다.
그러자, 아줌마 하는 말,‘변호사님, 그럼 이 계좌 돈 남은 것 다 빼고, 닫아버리면 되잖아요.’ 이에, 변호사,‘지금 Mrs. Kim이 말씀하시는 모든 것들은 이미 이 지구상에서 이혼을 하셨던 그 많은 분들이 다 궁리하고 시도했던 일 들입니다. 법이 그렇게 만만하고 호락호락 하지가 않아요. 아무리 계좌를 닫아도, 은행은 일정기간 그 서류들을 보관하게 되어있고, 상대방은 SUBPOENA라는 절차를 거쳐 은행으로부터 서류들을 직접 받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이에 아줌마, 마지막으로 열을 올립니다.‘근데, 변호사님, 한국은행은요, 미국하고 틀려서 다달이 나오는 STATEMENT라는게 없으니 제가 제출할 서류도 없는데, 그냥 넘어가면 안 돼요?’ 자, 한국은행의 경우, MONTHLY STATEMENT는 없더라도, 개인이 온라인을 통해서 하든지, 은행에 도움을 요청하든지, 계좌를 연 첫날부터 현재까지 모든 입금과 지출에 관한 내역을 하나도 빠짐없이 서류로 받을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한국은 미국에 비해 워낙 전산화가 일찍부터 잘 되어 있어서, 심지어 아주 오래전의 기록 조차도 은행이 전산화해서 보관하는 한, 기록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법이 이렇다 해도, 법망을 피해가고,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을 확률에 베팅을 하는 도박을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많은 이혼 소송의 경우, 공개하지 않고 은닉하려는 움직임에는 반드시 사냥개처럼 냄새를 맡고 끝까지 추적을 멈추지 않는 움직임이 뒤따른다는 사실, 또 이 과정에서 많은 변호사 비용이 깨진다는 진리를 아셔야겠습니다.
<
신혜원 변호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