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사이에 두 전직 대통령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은 갔지만 그들이 남긴 논쟁은 한국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국가장으로 하느냐 마느냐, 조문을 가느냐 마느냐 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논쟁에서부터, 그들에 대한 평가를 두고 공과 과를 나누는 정치적 논쟁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파장을 남겼다. 이제는 역사가 된 이들에 대한 이러한 논쟁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생각을 하게 한다.
흔히 “역사는 ‘if’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역사에서 ‘만일 ~라면’이란 가정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또 “역사에 ‘우연’이란 없다.”라고도 한다. 역사는 우연인 것처럼 보이는 필연적인 사건들이 조합된 것이라는 뜻이다.
옛날에 일어난 일을 시간이 한참 흐른 현재의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하필이면 그 때, 그 사람이 그런 일을 해야 했을까?’하고, 일어난 일만 보면 우연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벌어진 일의 이면에 있는 ‘그러한 이유와 그렇게 된 과정들’을 추적하여 살펴보면 그 일의 필연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역사란 ‘가정하지 않는 필연의 결과’라는 점을 인정해야 역사가 제대로 보인다.
역사를 보는 눈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의 눈이다. 랑케는 역사를 엄밀한 사료 비판에 기초를 두어 근대 사학을 확립한 독일의 사학자다. 랑케는, 역사가는 “본래 그것이 어떻게 있었는가.”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실(事實)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역사가의 기본적인 자질’이라고 강조하였다. 그가 믿는 역사 서술은, 역사가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가치 판단과 같은 주관성이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여 랑케는 역사의 객관주의를 지켰다.
둘째는 이탈리아의 철학자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 1866~1952)의 눈이다.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라고 하며 랑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크로체에게 있어서 역사는 책이나 기록 문서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역사는 기록 문서를 역사가가 비판 해석하고 연구하여 어떻게 재생시키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즉, 역사가의 현재의 관심과 추구하는 바의 정신이 바로 역사라는 것이다.
셋째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의 눈이다. 베버는 인간의 ‘사회적 행위’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베버의 사회적 행위란 어떤 행위가 단수 또는 복수의 행위자에 의해 생각된 ‘의미’에 따라 타인의 행동에 관계되며 그 경과에 있어서 타인의 행동에 지향되는 그러한 행위를 말한다.
즉,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는 이미 그 행위자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해석하기 위하여 먼저 사실을 직시하고 찾는 노력과 함께 그 행위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역사를 보는 세 가지 눈 중 하나의 눈으로만 보는 사람에게는 자기 합리화, 증오, 왜곡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직시하고 해석하고 이해된 역사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진정한 ‘용기’다. 자기의 눈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역사가 반복될 뿐이다. 그게 역사로부터 배워야 하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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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완 /코리안리서치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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