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것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보려고 하기보다는 애써 무시하거나 고정관념을 가지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죽음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에 죽음을 바로 보고 바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특히 죽음에 대한 깊은 가르침인 ‘ 티베트의 사자의 서’에서는 죽음의 순은 다음 생의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죽음을 바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 사람으로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신의학자이며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가 있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관찰하면서,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은 삶을 깊게 보고 진실한 삶의 가르침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러한 삶의 통찰들을 나누기 위해서 많은 책들을 썼다. 그녀는 ‘인간의 몸은 나비가 날아오르는 번데기처럼 영혼을 감싸고 있는 허물’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어느 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삶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습니다. 몸이란 허망한 것입니다. 눈덩이 같고 아지랑이 같아 무상하기 짝이 없습니다.
죽음이란 어떤 말이나 약초 주술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설사 하늘에 태어나 긴 수명을 누린다 해도 결국에는 죽습니다. 몸을 가지고 있는 한 결국에는 죽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죽어 다른 세상으로 떠날 때는 자신이 행한 선업 이외에는 확실한 피난처가 없으니 살아있을 때 바르지 못한 것들을 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죽음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사실은 “태어난 몸은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나는 죽는 것이 아니다.”이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몸이 죽는 것을 두려워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했다.
부처님께서는 바르게 산 삶이 죽음에 이르러 피난처가 된다 하셨다. 몸이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은 많은 임사체험자들이 경험한다. 그들은 몸이 살아 있을 때와 전혀 다름이 없는 의식을 가지고 몸 밖에서 몸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나도 짧은 순간 몸과 분리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자다가 옆에 누가 누워있는 것을 보고 순간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너무 빨리 일어나는 바람에 몸이 그대로 누워있었다. 다시 누워서 몸과 함께 일어났다. 그리고 방에 불을 켰다.
짧은 한 순간의 단순한 경험이지만 임사체험을 한 분들이 몸에서 빠져나온 순간과 같은 경험이었다. 몸안에 있을 때와 몸에서 나왔을 때가 차이가 없었다. 몸은 입고있는 옷과 같다.
다만 지금 우리는 그 옷을 나라고 생각하고 온통 거기에 촛점을 맞추고 살아간다. 그러나 임사체험을 하신 분들 중에는 삶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분들이 많다고 한다. 몸에 집착하며 이기적으로 살던 삶을 버리고 사랑으로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는 일상적 삶에서는 깨닫기 어려운 깊고 진실한 통찰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죽음의 순간에 통찰한 지혜나 사실들 그리고 과학, 철학, 종교 등의 가르침을 통해서 죽음을 사실적으로 이해하고 바른 이해를 통해서 지금 어떻게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인가에 대한 탐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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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공스님 한마음선원 뉴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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