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살면서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세계 각 곳에서 친지와 친구들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친구들이 뉴욕을 방문하면 공항 픽업에서부터 며칠간의 숙식 제공은 물론 관광 안내까지 해주고 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할 때까지 일체를 책임져야 했다.
친구들이 오면 다음 날로 7번 지하철을 타고 무조건 맨하탄에 나가 우선 쌍둥이 빌딩부터 올라가고, 자유의 여신상, 월 스트릿, 차이나타운, 브루클린 브릿지와 사우스 스트리트 시포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5애비뉴의 유명 백화점들, 라커펠러센터, UN본부, 센트럴 팍 등을 여러 날에 걸쳐 구경시켜 주었다. 또 컬럼비아 대학 캠퍼스와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 메트로폴리탄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 저녁 무렵, 타임 스퀘어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주변의 뮤지컬 극장들의 간판을 구경시켜주면서 놀란 표정의 친구들을 보고 뉴욕에 사는 자부심을 느끼곤 했다. 정말 그 때는 친지, 친구들이 오면 피곤하거나 힘든 줄을 몰랐다. 문자 그대로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 한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젠 한국도 경제적으로 발전했고, 친지와 친구들도 해외여행에 익숙해져서 뉴욕을 방문하면 알아서 맨하탄 호텔에 투숙하고, 미리 뉴욕의 관광회사와 연결하거나 스스로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 수준 높은 관광을 하고 돌아간다. 웬만한 것을 구경시켜줘도 친구들의 눈높이를 맞추어주기 힘들다.
그 대신 친구들이 찾는 볼거리도 달라졌다. 남들 다 가는 유명 관광지보다는 어떤 영화에 나오는 조그만 디저트 카페를 굳이 찾아가고, 센트럴 팍에 ‘Imagination’이라고 땅바닥에 새겨, 비틀즈의 멤버였던 존 레넌의 사망을 애도하는 스트로베리 필즈 기념비를 보러 간다. 그렇게 주제와 스토리가 있는 의미 있는 여행을 즐긴다.
그런데 그렇게 구석구석 찾아다니는 친구들도 한인 이민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서린 코리아타운을 둘러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그들이 그러한 코리아타운의 역사와 스토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코리아타운의 한인들에 관한 소설이나 영화 또는 드라마가 히트를 치면 “아! 그랬구나.”하고 비로소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그 작품이 외국 비평가들의 호평이나 국제적인 상이라도 받으면 그제야 한인 이민 스토리가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세계적인 이야기라며 감탄한다. 2021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영화 ‘미나리’가 한 예이다. 하지만 그 때 뿐이다. 그러한 코리아타운에 관한 관심과 감탄은 지속되지 못하고 있다
세계 각지의 코리아타운에는 한국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사적지와 관련 이야기들도 아직 많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한인 이민자들의 희노애락이 담긴 많은 장소와 공간들 그리고 인물들에 관한 기록과 영상 및 문헌자료들이 남아있다.
이러한 코리아타운의 문화자원들에는 수많은 감동적인 스토리가 담겨있다. 코리아타운의 문화자원은 스토리로 엮어진 한인들의 삶의 역사와 그 흔적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코리아타운의 스토리를 어떻게 엮어내어 지속적인 관심과 감탄을 불러일으키느냐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남겨진 유적과 유물, 장소와 공간들 그리고 올드 타이머들의 구술들을 하루 빨리 기록하고 정리하고 보존해야 한다. 멀지 않은 장래에 이러한 한인들의 문화자원은 상당량이 사라질 것이다.
세계 각지의 코리아타운들의 문화자원에 대한 기록, 정리 및 보존은 현지 한인들이 담당해야 한다. 세계 각 지역 한인회가 중심이 되어 할 일이다. 세계 각 지역의 현지 한인들이 그들의 삶의 역사를 세계적인 문화자원으로 여기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알아줄 리 만무다.
<
주동완/코리안리서치센터 원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