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보았던 ‘일백만 달러’라는 흑백 영화가 있었다. 그 당시 퍽 인상 깊었던 영화라 지금도 기억에 남았다.
죽음을 앞둔 어떤 부자가 병상에서 집사를 부른다. 일백만 달러 수표를 만들어 전화번호부 책 같은 것에서 자기가 지적한 사람에게 가져다 주라고 지시한다. 첫번째로 낙점 된 사람은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갇힌 사형수였다.
사형수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다가 이 돈을 다 쓰고 죽으면 안되겠느냐고 간수에게 간청해 보아도 간수는 비웃는다. 사형장에 끌려가는 날 비가 내린다. 비에 젖은 수표가 땅에 떨어져 간수의 발아래 밟혀 땅속에 묻히고 만다. 사형수는 “내 돈, 내 돈” 을 외치면서 끌려간다.
두번째는 수배 중인 사기범에게 낙점 된다. 수표를 받아 든 그는 우선 구두와 양복을 사려고 가게마다 찾아 다니지만 번번이 거절 당한다. 그는 배 고프고 지쳐서 식당을 찾아간다. 수표를 내밀고 한 끼의 식사를 요구한다.
주인은 수표를 받고 한 접시의 음식을 내 준다. 그는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다. 주인은 계산대 쪽으로 가서 수배자 명단의 얼굴을 확인하고 “사기를 치려면 작은 금액으로 해야지 쯔쯔.” 혼자 말로 중얼거리고 수표를 남포불에 붙여 태워 버린다.
세번째 낙점자는 가난한 월급쟁이에게 주어진다. 그는 허름한 옷에 돋보기 안경을 쓰고 있다. 아침 출근길, 그의 등 뒤에서 아내가 집세도 내야하고 저녁거리도 다 떨어졌다고 투덜댄다. 그는 대답하는 둥 마는 둥 집 밖으로 얼른 나온다. 집 앞에서 부자의 집사를 만난다. 집사는 “부자 아무개가 이 수표를 당신에게 주는 것입니다.”
월급쟁이는 수표를 받아 들고 안경을 고쳐 쓰고서 한참을 수표를 바라보다가 “원 밀리온 달러” 신음처럼 내 뱉고 쓰러져 버린다.
네번째는 양로원에서 지내는 할머니에게 주어 진다. 할머니는 침착하게 “수표를 주신 분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하고 말한다. 할머니는 안내를 받아 병원으로 부자를 찾아간다. 그녀는 부자에게 인사를 하고 “저에게 이 수표를 제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주시는 것입니까?” 묻는다.
부자가 그렇다고 대답하고 “그런데 어디에 쓸 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고아원과 양로원을 짓겠습니다.” 그녀가 대답하자 부자는 “돈이 임자를 제대로 만났군요” 하고 피곤한 듯 스르르 눈을 감는다.
영화의 줄거리는 돈의 윤리적인 쓰임을 그린 것처럼 느껴 진다. 그러나 다른 측면도 생각하게 한다. 사형수와 사기범은 행운을 잡을 준비가 안된 사람이고 월급쟁이는 분수에 맞지 않는 거액에 놀라워 불행이 된 것이다. 복권 당첨의 행운도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행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가끔씩 듣는다.
행운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능력 있고 준비되어 있는 사람만이 받을수 있고 지킬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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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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