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지원 할만큼 했다” 여론 과반 속 9개월만에 백악관회담
▶ 전쟁 장기화 양상으로 내년 재선 도전하는 바이든에 ‘변수’ 부상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대통령[로이터=사진제공]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21일 워싱턴 방문과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어느새 '운명 공동체'로 엮인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상의 절실함을 보여준 자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언론에 공개된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주요 7개국(G7) 및 다른 파트너와 함께 우크라이나의 장기 안보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공식화한다"며 우크라이나에 당장은 해주기 어려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의 대안을 제시했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술 더 떠 "양국은 정말로 진정한 동맹"이라고 말하며 미국의 지원에 사의를 표했다.
확신과 열정으로 가득 찬 두 정상의 말과는 달리, 약 1년 7개월간 이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인의 누적된 피로도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난달 CNN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1%는 미국이 러시아에 맞선 우크라이나를 돕는 측면에서 "충분히 지원했다"고 했고, "미국이 더 많이 지원하길 희망"한다는 응답은 48%였다.
이런 여론을 반영하듯, 이날 워싱턴 의사당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대하는 미국 의원들의 '온도'는 그에게 상·하원 합동 연설의 무대를 만들어 주고 영웅처럼 맞이했던 작년 12월과는 달랐다.
공화당 소속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의회 연설 요청을 거부한 것은 물론 젤렌스키 대통령을 취재진 앞에서 공개적으로 환영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다.
미국은 21세기 들어 치른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수많은 인명 희생과 자금 투입에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병력을 파병하지 않고, 무기 등을 지원하는 개입 방법을 택했다. 그 기조를 공유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군사·경제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러시아의 돈줄을 차단하는 국제 제재망을 짰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개전 20주년이었던 2021년 아프간에서 굴욕적 철군을 해야 했던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미군의 피는 흘리지 않으면서 러시아의 확장주의와 그에 감화받을 수 있는 중국의 '모험주의'를 견제하는 '절충책'을 택했던 셈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지원은 국제사회의 예상을 넘어선 우크라이나의 결연한 항전 의지와 결합하면서 현재까지 일정한 성과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중평이다.
그러나 CNN의 최근 조사 결과에서 보듯 미국인들의 피로가 커지고 있는 상황은 미국의 군사지원에 크게 의지하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물론 바이든 대통령도 긴장하게 만드는 요소다.
독일 키엘 세계경제연구소(IfW)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미국 행정부 또는 의회 차원에서 결정한 지원액을 기준으로 합산한 결과, 미국은 개전 이후 총 750억 달러(약 100조 원) 이상의 대(對) 우크라이나 군사적, 재정적 및 인도적 지원을 했다.
미국 외교협회는 이날 홈페이지에 올린 기사에서 개전 이후부터 올해 7월31일까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총 768억 달러(약 103조 원)의 지원을 했고, 그 가운데 61%가 군사 지원이었다고 소개했다.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장기화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은 내년 대선에서 득표 요인이 될 수도 있고,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이제와서 지원을 끊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 관측통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장소를 유엔 총회가 열리는 뉴욕이 아닌 워싱턴 백악관으로 택함으로써, 그 계기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 의회와 여론을 상대로 지원을 호소할 수 있게 '멍석'을 깔아준 것이다.
이는 전쟁에서 이겨야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에 버금가는, 바이든 대통령의 내년 대선 승리에 대한 '절실함'을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은 전황의 균형을 급격하게 흔듦으로써 핵보유국 러시아를 궁지로 몰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모습이다.
미국은 집속탄에 이어 최근엔 인체 위해와 환경 오염 우려로 논란이 제기되는 열화우라늄탄까지 우크라이나에 제공키로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가 가장 절실히 원하는, 사거리 300km의 에이태큼스(ATACMS) 지대지 전술 미사일 제공에는 주저하고 있는데, 이는 바이든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지대지 미사일을 제공해 우크라이나가 이를 사용할 경우 기회만 되면 핵전쟁을 위협하는 러시아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에이태큼스 미사일 지원 카드는 여전히 테이블에 남아 있다며 러시아에도 경고의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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