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주 가는 일식집에 가면 메뉴에 지라시가 있다. 회덮밥은 메뉴에 없지만 요리사는 회덮밥을 주문하면 지라시 재료를 가지고 회덮밥을 만들어준다. 지라시의 재료를 잘게 썰어서 고추장을 얹으면 그것이 회덮밥이 되고 나는 그것을 열심히 비벼서 맛있게 먹는다.
그런데 가끔씩 지라시를 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요리사는 재료를 버무리거나 자르지 않고 내어 준다. 지라시를 먹는 방법은 회덮밥을 먹는 방법과 많이 다르다. 음식 재료를 하나씩 와사비와 간장에 찍어서 한입에 넣고 음미한다. 다음 재료를 먹기 위해서는 얇게 저민 생강을 먹고 바로 전의 재료의 맛이 사라지게 하고는 다음 생선이나 새우 등의 맛을 음미하는 것이다.
같은 재료를 사용하지만 조리하고 먹는 방식의 차이가 한민족과 일본민족의 차이를 잘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일본인은 하나 하나 재료의 순수성을 음미하는 반면에 한민족은 잘 버무려서 섞인 상태로 음미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르게 해석하면 일본은 개별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반면에 한국은 종합적이고 융합적인 새로운 맛을 추구하는 것이다.
산업이나 문화에서도 같은 성향을 볼 수 있다. 아날로그 시대였던 20세기에 자동차나 텔레비전, 전화, 카메라와 같은 개별적인 상품에서 일본의 품질과 성능을 따라갈만한 제품을 만드는 나라는 독일이나 스위스 정도였다. 일본은 거기에다 고장이 잘 나지 않고 가격 경쟁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수십년간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의 독보적인 경제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된 21세기에 들어 제품의 경쟁력은 품질 뿐만 아니라 개성과 융합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고 일본의 경쟁력은 다소 둔화되었다.
휴대전화는 단순히 통화기능 뿐아니라 카메라, GPS, 영화감상, 게임 등 종합 전자기기가 되었고 하나 하나의 기능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일본보다 각각의 기능에서는 다소 품질이 떨어지지만 종합적이고 여러가지를 섞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데 뛰어난 한국제품이 더 소비자의 선택을 받게 된 것이다.
섬으로 고립된 일본은 단일 민족으로 수천년을 살다보니 순혈성을 가치체계의 우선순위로 놓게 되었고 모노즈쿠리로 대변되는 하나의 목표에 궁극적인 최고를 존중하는 사회가 된 반면에 한국은 대륙의 끝자락에서 각종 문화와 민족, 사상이 버무려져서 새롭고 독특한 문화를 창조해 냈다.
흑백요리사에 나왔던 요리 명장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유럽, 중국, 일본 등에서 배워온 지식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맛과 멋을 창조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고 국민들은 그러한 시도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을 알 수 있다.
21세기에는 창작의 과정도 융합이 대세가 되었다. 스마트폰, 전기자동차와 같이 상품들도 여러가지의 기능이 합쳐질 때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상품이 등장하는 세계에서 우리의 장점을 잘 살려서 한국이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리더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보이는 시대가 오고 있다.
아울러 다가오는 통일의 시대에 남과 북이 지라시처럼 나누어져서 갈등하는 국가가 아니라 회덮밥이나 비빔밥처럼 함께 어우러져서 새로운 통일 대한민국이 되어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존경받는 나라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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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훈 워싱턴 평통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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