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에서 휴전이 성립된다면 늦더라도 안하는 것보다는 나은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23년 10월7일, 하마스의 참혹한 테러 공격으로 1,200명이 사망하고 251명이 인질로 잡힌데 대한 이스라엘의 대대적이고 지속적인 대응이 가자 지역에 초래한 막대한 피해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하마스가 통제하는 팔레스타인 보건부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는 5만7,000여 명을 헤아린다. 이스라엘 신문 하레츠는 국제적 명망을 지닌 학자의 에세이를 인용해 실제 사망자수가 그보다 훨씬 많은 10만 명에 근접한 것으로 추정한다. 여기에 기아와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까지 포함하면 이 수치마저 훌쩍 넘어설 수 있다. 이는 가자 지역 전체 인구의 5% 정도로 21세기 최악의 전시 사망자 수준에 해당한다. 물론 사망자 집계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반론도 있지만 그 누구도 충격적일만큼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한다. 가자는 대부분 거주가 불가능한 잔해더미로 변했다. 유엔에 따르면 210만 명의 전체 인구 중 190만 명이 전쟁통에 피난민으로 전락했다.
이들에게 가해진 심각한 위해를 바로잡을 길은 없지만 그들이 겪는 비참한 상황에 다소나마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바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이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듯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여기서 알아야 중요한 현실은 팔레스타인 국가는 이스라엘이 수용해야만 건국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을 ‘윽박질러’ 이 문제에 대한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은 권력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외부 지도자 두 명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한 명은 이스라엘인들의 기억속에 가장 친-이스라엘적인 미국 지도자로 자리매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자신이 지닌 정치적 자본을 이용해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권리와 건국을 허용하도록 촉구할 수 있다. 이스라엘을 움직일 지렛대를 지닌 또 한 명의 지도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다. 이스라엘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정상화를 간절히 원한다. MBS로 알려진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평화의 대가가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의 최대 장애물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는 지금 유례없이 강력한 입지를 확보했고 이를 이용해 역사를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가자 바깥에서 이스라엘이 수행한 전쟁은 상상을 초월하는 성공를 거두었다. 헤즈볼라는 궤멸됐고,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역사속으로 사라졌으며, 이란은 수 십년래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빠진데다 핵 프로그램마저 심각하게 훼손됐다. 가자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하마스는 과거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다음번 이스라엘 총선까지 1년 조금 넘게 남았지만 그보다 더 일찍 치러질 가능성도 있다. 네타냐후가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무너뜨리고, 시리아의 어금니를 뽑았을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안전하게 지키면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할 방법까지 찾아낸 후보로 선거에 나선다고 상상해보라. 그는 파트너인 우익 극단주의자들의 도움 없이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스라엘 연립정부의 극우 파트너들은 팔레스타인 국가 건립 움직임을 추호도 용인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네타냐후가 이끄는 연립정부에 참여했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평화로운 팔레스타인 해법으로 세계를 놀래키는 것이 이스라엘의 안보를 지키는 확실한 방법임을 이스라엘 유권자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물론 이를 통해 네타냐후는 자신의 자리도 보존하게 된다.)
네타냐후는 지난 월요일 백악관 연설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이웃들과 평화를 이루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관해 언급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국가가 건립된다 해도 정상적인 국가의 모든 속성을 갖게 되진 않을 것이라며, 이스라엘이 안보와 관련한 특정한 권한을 그대로 유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렇다해도 이는 분명 결실을 기대할 수 있는 협상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기 십상이다. 10월7일 사태의 여파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치적 양보에 깊은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가자에서 발생한 대규모 인명피해의 여파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이 내건 건국의 전제 조건을 수용하려 들지 않는다.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 뿐 아니라 웨스트뱅크에서도 잔혹하게 행동했다. 팔레스타인 수감자협회에 따르면 하마스의 10월7일 테러공격 이후 웨스트뱅크에서 최소한 1만8,000명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체포됐다. 이와 함께 2025년 한 해에만 대략 5만개의 신규 정착촌 건설이 승인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사상 유례 없는 수준으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베자렐 스모트리치와 이타마르 벤 그비르 같은 장관들은 영구적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국가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인종세탁, 어쩌면 둘 다를 위한 조건을 조성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최소한 또 하나의 길을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앞으로 나타날 팔레스타인 국가는 잔존국(rump state)에 불과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측이 협상에서 발을 뺄 때마다 그 다음의 협상이 훨씬 심각해졌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들 들어 1947년 그들은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의 거의 절반을 가져갈 수 있었다. 2000년의 캠프 데이비드 협상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웨스트뱅크와 가자의 약 95%를 내주는 방안이 제시됐고, 이들과 유사한 제안이 2008년 에후드 올메르트에 의해 제기됐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가자와 웨스트뱅크의 70%만 차지한다 해도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을’의 입장에 선 약자들에겐 시간이 지날수록 협상이 불리하게 돌아간다. 그나마 지금 건질 수 있는 최상의 협상안을 받아들여 성공적인 국가 건설에 활용하는 편이 낫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트럼프 단 한 명뿐이다. 만약 트럼프가 중동문제 해결에 성공한다면 그의 혼란스럽고 반생산적인 외교정책을 비난해온 사람으로서 필자는 주저없이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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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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