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의 국가자본주의
▶ 칩스법 대가로 지분취득 추진
▶ 보조금 기다리던 삼성 등 변수
▶ 트럼프, 이미 인텔 등 경영 간섭
▶ 정부차원 ‘제2 엘리엇’ 배제못해
▶ 재계 대미 시설투자 계획 제동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 대만 TSMC 등 주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가로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에 국내 반도체 업계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위한 당근 성격이던 보조금이 미국 정부의 경영 개입을 불러오는 ‘족쇄’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삼성과 SK 등이 검토하던 현지 시설 투자 확대에도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370억 달러 규모의 텍사스주 테일러시 공장 투자와 관련해 지난해 말 47억 5000만 달러(약 6조 6400억 원)의 보조금이 확정됐지만 아직 미국 정부로부터 지급받지는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부터 보조금의 근거인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보조금 집행을 지연시킨 영향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보조금 지원의 대가로 지분 인수 카드를 꺼내 들자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사실상 계약 파기”라는 반응이 나왔다. 보조금 집행을 기다리는 동안 삼성의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 건설은 대부분 진행돼 내년 가동을 앞두고 있다. SK하이닉스가 4억 580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는 인디애나주 패키징 공장은 이번에 직접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후공정 투자도 칩스법 지원에 포함돼 있어 언제든 지분 인수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투자 액수와 계획에 따라 합의를 거쳐 보조금 지급 계약이 성사된 건데 한순간에 상황이 뒤바뀐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분 인수가 현실화한다면 미국 정부가 우리 기업의 경영 의사 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문이 열린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을 미국 보조금 액수에 대입하면 트럼프 정부는 1.5% 내외의 지분율로 주요 주주로 올라선다. 이재용 회장이 직접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율이 1.65%인데 이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 본사가 아닌 미국 법인의 지분을 취득하는 방안도 거론되는데 이 경우 지분율은 훨씬 커질 수 있다.
미국 측은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할 경우 공급망 통제 등으로 자국의 경제안보에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회사의 장비나 소재를 우선 사용하게 하거나 민감한 경영 정보를 들여다보는 방식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반도체 설계에 이어 제조 역량까지 미국 정부가 통제하는 상황이 우려된다. 중국 시장 등에 포진한 주요 고객사들과의 관계에도 균열이 불가피하다.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삼성전자의 중국 매출은 28조 7918억 원으로 미국 매출(33조 4759억 원)보다 소폭 적지만 막대한 수준이다.
미 정부는 이미 반도체 등 전략산업에서 경영 간섭 혹은 개입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를 만나기 전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문제 삼아 탄 CEO의 사임을 요구했다 철회한 바 있다. 6월에는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과정에서 중요 경영 사항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를 확보하기도 했다. 지난달 상법 개정안이 통과돼 국내 기업 경영에 외국 자본의 입김이 거세진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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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노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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